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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16 17:55 수정 : 2019.07.16 18:46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2019년 6월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북한 목선의 삼척항 진입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달 북한 소형 목선의 삼척항 입항 사건을 계기로 군의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북한 어선이 57시간 동안 우리 해역을 헤집고 다니다 유유히 삼척항에 들어온 것도 까맣게 몰랐던 군에 어떻게 안보를 맡기겠느냐는 우려는 당연해 보인다. 게다가 며칠 뒤엔 해군 2함대에서 병사에게 ‘거짓 자수’를 시킨 일까지 들통났으니, 군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우리 군이 이렇게 깊은 불신을 받게 된 건 안타까운 일이다.

북한 목선 사건과 관련해 군당국의 처신에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군은 삼척항까지 들어온 목선을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가, ‘축소·은폐 의혹’이 제기되며 거센 역풍을 만났다.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 밝히면 될 일을 모호하게 덧칠했다가 매를 벌었다. 그래도 사건이 터진 6월15일부터 정부의 합동조사 결과가 발표된 7월3일까지, 군을 스무날 가까이 ‘동네북’처럼 두들긴 건 지나쳤던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군 관련 사건·사고 때 축소·은폐 의혹은 ‘단골 메뉴’나 다름없다. 예전에 국방부 출입기자로 ‘22사단 총기난사 사건’이나 ‘28사단 의무병 폭행 사망 사건’ 등을 취재할 때는 직접 축소·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그래도 이번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사례는 별로 기억에 없다.

통상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민감한 사안은 군당국이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 어느 정권이든 청와대와의 협의나 보고 없이는 보도자료 하나도 쉽게 내보내지 못하도록 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언론이 처음부터 청와대를 사정권에 놓고 연일 “축소·은폐의 배후를 밝히라”며 파문을 확산시킨 건 보수언론과 문재인 정부의 태생적 갈등을 방증하는 또 다른 사례로 읽힌다.

군당국은 여론의 뭇매가 쏟아지자 뒤늦게 경계 실패를 인정했다. 정부의 조사 결과를 보면, 해경과 해군 1함대, 육군 8군단, 합참 등 관련기관 간 상황 전파가 지연됐고, 심지어 23사단 해안 대대의 초동조치 부대는 상황 종료 10분 뒤에야 현장에 늑장 출동하는 등 여러 문제가 확인됐다. 경계 태세에 허점을 드러낸 건 군당국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목선을 탐지하지 못했다고 경계 실패로 규정하는 게 온당한지는 의문이다. 군의 해안경계 임무는 북한군의 침투를 탐지·차단하는 것이다. 이런 작전 개념에 따라 레이더 등 해안 감시장비는 북한 전투함이나 잠수함, 고속 공기부양정 등의 형태와 기동 특성에 맞춰 최적화돼 있다. 아무 군사적 위협도 없는 소형 어선도 단속하라는 건 군의 감시 능력과 작전 필요성에서 모두 무리로 보인다. 군이 군단장과 사단장, 함대 사령관에겐 지휘 책임을 물었지만 연대장 이하 간부와 해안 경계병을 징계에서 제외한 데엔 이런 현실이 고려된 것 같다.

겨우 높이 1m, 길이 10m인 작은 민간인 어선은 이제 경계 실패를 반복해선 안 될 중요 작전 대상이 됐다.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물결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나무배를 동해 망망대해에서 찾아내려면, 이에 최적화한 레이더 등 감시장비를 새로 배치하고 경계병의 감시 능력도 향상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게 정말 그럴 만한 군사적 가치가 있는 걸까. 누군가는 “북한 특수부대가 목선을 타고 왔으면 어떻게 할 뻔했느냐”고 하는데, 지나친 억측이다. 앞으로 ‘목선 한척도 놓쳐선 안 된다’는 게 경계 지침이 되면 근무 강도가 강화되고 업무 부담만 가중될 소지가 크다.

국방 현실과도 동떨어졌다. 군 병력은 앞으로 출생률 급감 등의 여파로 대규모 감축이 불가피하다. 정부도 이에 대비한 ‘국방개혁 2.0’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엔 2020년대 초·중반까지 육군 8군단과 23사단을 해체하고 해안 경계임무를 해경으로 이관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그럼 목선 하나 잡자고 국방개혁을 되돌려야 하는가.

한정된 가용 인력과 재원을 효율적으로 투자해 가장 ‘가성비’가 높은 대북 억제력을 확보하는 게 국방정책의 과제다. 핵심 국방현안을 제치고 소형 어선 잡는 걸 우선순위의 앞자리에 놓겠다고 하면, 그건 코미디 같은 일이다.

박병수
논설위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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