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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5 18:28 수정 : 2019.07.25 19:01

신승근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 통화에선 ‘아베의 요구’가 자주 의제에 오른다. 아베 총리가 일본인 납치, 중·단거리 미사일, 생화학무기, 북한에 대한 불신 등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직접 ‘아베의 요구’를 전한 적도 있다고 한다.

문 대통령에게 아베 총리는 ‘짜증스러운 존재’일 것이다. 남북관계 발전에 재를 뿌리고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에 딴죽을 거는 훼방꾼 노릇을 해왔기 때문이다. 평창 올림픽 개막식 직전인 2018년 2월9일 한-일 정상회담, 키리졸브 연습 연기 방침을 밝힌 문 대통령에게 아베 총리는 “동북아 군사 균형이 흔들린다”며 맹렬히 비난했다. 문 대통령은 “주권의 문제, 내정에 관한 문제”라고 맞받았다. 반도체를 겨눈 일본의 ‘3대 핵심소재 수출규제’도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만남 다음날 전격 발표했다. 전략물자 북한 유출, 신뢰 훼손…. 일본은 수시로 말을 바꾸며 합리화한다.

우리 내부에선 자기학대가 한창이다. 한국이 피해를 본다,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이 문제다…. ‘과잉 민족주의에 기댄 맞보복은 아베와 일본 우익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라 꾸짖기도 한다. 러시아의 독도 영공 침범까지 겹치자 ‘구한말 상황’이라며 정부를 공격한다. 약소국의 비루함을 탓하며 자학하는 태도야말로 ‘구한말 버전’이다. 경제 도발에 대비하지 못한 정부를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강대국의 가랑이 밑을 긴다고 문제가 풀릴지 의문이다. 남북관계에 더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하청국가를 자임할 때까지 한국 경제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위협을 명분 삼아 결속을 다지며 전쟁 가능 국가를 향해 달려온 아베 정권이 한국마저 미래의 위협으로 설정하고 싹을 밟겠다고 나섰다면 당당히 맞서는 게 정답일 수 있다.

청와대 여민관에서 22일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강기정 정무수석(오른쪽)이 조국 민정수석이 가져온 책 <일본회의의 정체>를 살펴보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13일 페이스북에 ‘죽창가’를 링크한 것으로 시작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대일 여론전’에 대한 비난도 유사한 맥락이다. 친일·반일로 편가르기를 한다고 비난하고, 대통령의 뜻이냐며 청와대를 공격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까지 “공직자로 갈등을 확산·심화시키는 역할은 적절치 않다”고 거들었다. 여야와 보수언론이 합세해 ‘조국 입막음’에 성공했다.

‘조국의 페북질’은 잘못인가. ‘죽창가’로 시작한 44건의 페북 활동 가운데 정두언 전 의원 별세에 대한 글을 빼면 43건이 일본 관련 사안이다. 대부분 대법원 강제노역 배상 판결의 정당성, 1965년 한일협정으로 배상권이 사라졌다는 일본 주장에 대한 국내외 반박 보도 등을 링크했다. 그의 주장도 이 부분에 집중됐다.

“애국이냐 이적이냐”(18일), “마땅히 ‘친일파’라 불러야 한다”(20일)는 글이 큰 논란거리다. 독재정권에서 반대세력을 탄압할 때 쓴 ‘이적’이란 용어를 끌어다 쓴 건 적절치 못하다. 그러나 일본의 논리를 공박하고, 내부의 ‘친일적 태도’를 일갈한 건 할 수 있는 얘기다. 국민은 ‘독립운동은 못 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는데 불매운동의 후진성을 문제 삼고, 경제 도발에 맞서기보다 구한말에 빗대 자기학대에 몰두하는 행태를 많은 국민은 ‘친일적’이라 생각한다.

민정수석이란 자리가 ‘메신저’로 적절한지는 논쟁이 필요한 지점이다. 하지만 일본은 관방장관이, 내각이 한국을 직접 공격한다. 총리와 장관, 여당 의원들이 ‘아베의 노림수’를 직격하고, 대통령과 청와대는 적절히 수위를 조절하면서 일본과 물밑 대화를 모색하는 게 이상적인 역할분담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대부분 입을 닫았다. 자타 공인 일본통인 이낙연 총리부터 제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말 많다”고 면박을 준 것 말고 인상적인 행적이 없다. 문 대통령이 대법 강제노역 판결과 ‘위안부 합의’는 해법이 쉽지 않은 문제이니 총리실에서 면밀히 대처해 달라고 몇 차례 당부했다는데, 총리실이 뭘 했는지도 불분명하다.

여당 의원이라도 ‘아베와 맞짱’을 떠야 하는데 침묵이 대세다. 되레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전략물자 북한 반출이라는 일본 논리를 격파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카드로 일본과 미국을 압박했다. 이낙연 총리와 장관들, 뒤늦게 내부 총질에 가담한 여당 의원들은 제 밥값을 했는지,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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