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13 18:36
수정 : 2019.08.13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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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3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사직로 적선현대빌딩으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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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국가전복을 꿈꾸는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이 법무장관 자리에 앉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의문에 “왜 안 되는데?”라고 되묻고 싶다. <국가보안법 해설>을 펴내고 ‘미스터 보안법’으로 불린 황 대표는 황당하겠지만, 세상이 변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권위주의 정권에서 많은 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했다. 고뇌하고 주저하며 응원했고, 누군가는 사회변혁 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전위조직을 만들고 투신한 이도 적지 않다.
1989년 노동운동으로 구속된 경기고 동기동창 고 노회찬 전 의원에게 “구치소가 너무 따듯해선 안 된다”고 했던 황 대표는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6월항쟁, 노동자 대투쟁, 전대협,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등 다양한 활동이 민주주의를 키웠다. 우리 사회, 국가의 품격도 그만큼 높아졌다. 경찰 보호 아래 평화적 촛불시위로 대통령을 하야시킬 수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환영 펼침막을 내걸고 ‘백두칭송위원회’를 결성한다. “문재인 탄핵”을 외칠 수도 있다. 용공조작을 일삼던 검찰·경찰·국가정보원·국군기무사령부 등 공안통치 기관들은 인권유린을 반성하며 반복적으로 수술대에 오른다.
세상의 변화를 무시한 채, 30년 전 활동을 이유로 사면복권된 이가 공직을 맡을 수 없다고 한다면 민주공화국이라 할 수 없다. 공무담임권은 공무원선거권, 국민표결권과 함께 국민의 참정기본권에 속한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어도”가 아니라, 그런 것까지 가능한 세상이 됐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가 반국가단체인 사노맹에 가입해 국가전복을 꿈꿨는지, 관련 사실도 따져봐야 한다. 그가 구속기소된 건 1993년. 사노맹 주역인 박노해·백태웅 검거로 조직이 사실상 와해된 시점이다. 울산대 교수였던 조 후보자는 대학원생 때인 1991년 사노맹 산하 연구조직인 ‘남한사회주의과학원’에 가입한 게 문제였다.
93년 1심 재판에선 반국가단체 가입 등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1994년 6월 서울고등법원은 이적단체 가입 등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1년6개월로 형량을 낮췄고, 95년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그에게 가입을 권한 백태웅이 징역 15년형, 박노해가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은 것에 견줘 낮은 형량이다.
1994년 6월 서울고등법원 제4형사부 판결문에 이유가 적시돼 있다. ‘조국이 사과원 운영위원 겸 강령연구실장으로 가입하기는 하였으나 1992년 3월경 탈퇴한 점’, ‘대학 강의 기타 연구활동 때문에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거나 사회주의 정당 강령 작업을 하지 않은 점’, ‘비밀·전위조직 활동이나 폭력적 혁명방법에 의한 사회개혁은 더 이상 가능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점’ 등을 양형 근거로 밝혔다.
황 대표가 이런 판결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사노맹이 무장봉기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 달성을 목표로 폭발물을 만들고, 자살용 독극물을 만들었던 반국가단체”라며 “이런 사람이 법무장관이 된다면 검찰이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있겠냐”고 비난했다. 대법원은 1995년 사과원을 반국가단체가 아닌 이적단체로 규정했다. 2008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사노맹을 ‘민주 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했다’고 재평가했다. 조 후보자는 1995년 사면복권됐다. 황 대표는 이런 사실을 무시한 채 ‘조국=사노맹=반국가단체=사회주의 혁명=검찰 수사 불공정’으로 질주한다. 전형적 색깔론이다.
민정수석에서 법무장관으로 직행하는 문제는 엄밀히 따져야 한다. 검찰 수사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의심받을 수 있다. ‘폴리페서’라는 비판에 현실참여 ‘앙가주망’을 실천했다는 조 후보자 논리도 비난받을 대목이 많다. 하지만 30년 전 운동권 이력을 근거로 부적격자로 몰아가는 건 옹색하다. 고시공부에 몰입하고 시국사건을 다루는 공안검사로 살아온 황 대표의 삶을 손가락질하는 이도 많다. 색깔론은 가장 나태한 정치공세다. 세상의 변화에 뒤처진 황 대표의 ‘인식 지체’가 도드라질 뿐이다.
신승근 논설위원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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