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12 19:17
수정 : 2019.12.13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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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잠실동 아파트 단지. 정부는 크고 작은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서울 아파트 가격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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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주도 성장이 아닌 불로소득 주도 성장만 나타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 11일 문재인 정부 청와대 1급 이상 전·현직 참모 65명의 집값이 지난 3년간 평균 3억2천만원 올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던진 경고다.
청와대는 이런 조롱에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 부동산 시장의 현실과 평균 상승률 40%에 이른 청와대 참모들의 부동산 시세는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을 부끄럽게 만든다. 부동산 정책을 총괄한 김수현 전 정책실장마저 9억원짜리 과천 아파트가 재건축단지로 19억원으로 뻥튀기됐다니, 배신감을 느끼는 이도 많을 것이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말했다. “강남권이나 세종시, 경기도의 재건축단지 등 가격이 급등하는 곳에 부동산을 많이 가지고 있고, 이것은 정부 관계자들이 가격 안정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부양이나 투기를 장려하는 쪽으로 정책을 쓰는 게 아닌가….”
청와대 참모가 제 배 불리려 정책을 왜곡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참모들 중에는 재산이 느는 사람도 있고 준 사람도 있고, 소수를 일반화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청와대 관계자 발언은 어처구니없다. 자신의 재산은 늘지 않았다고 했던 이 관계자는 “제 재산은 이자 등이 붙어서 올랐을지 모르겠으나 평균 3억원은 얼토당토않다는 뜻”이라고 부연했다니 기가 막힌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국민 불안과 우려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처신해야 했다. 그 위치가 국민 뜻을 헤아려 발언하라는 자리 아닌가.
재산을 신고한 전·현직 비서실 공직자 76명 가운데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보유한 65명을 대상으로 했으니, 소수 일반화가 아니다. 더 심각한 건 다주택자가 늘어난 것이다. 집을 두 채 가진 이가 13명, 세 채 가진 이가 5명이다. 2017년에 견줘 5명이 증가했다. 집 여러 채 가진 이들을 불편하게 해 팔도록 만들겠다며 문 대통령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집을 팔았다. 그런데 집값 폭등의 수혜자이면서, 두 채 이상 집을 가진 참모가 늘어난 청와대라면 국민은 부동산 정책의 이중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안 산 게 바보”라며 집안 싸움이 한창이다. 집 팔라는 정부 말에 콧방귀 뀌며 갭투자하고 임대사업자 등록해 수억원을 벌었다는 사람도 많다. 12일 국토교통부 통계로도 집값 상승은 확인된다. 지난해 서울 집값은 1년 전보다 6.2% 올랐다. 2017년 3.6%보다 상승세가 더욱 가팔랐다. 이젠 서울 아파트는 언감생심, 빌라나 협소주택을 구입하려는 사람도 줄을 섰다. 늦었지만 더 오르기 전에 뛰어들려는 이들이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제대로 하는 걸 겁내는 게 아닌가 의문이 든다. 문재인 정부 들어 17번의 크고 작은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조세 저항’ ‘보유세 폭탄론’을 걱정하며 ‘임대사업자 등록 활성화’ ‘찔끔 보유세 인상’ ‘일부 지역 핀셋 분양가 상한제’로 투기꾼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며 대응한 탓에 결과적으로 뒷북만 쳤다.
문재인 정부 1년 때 청와대 고위 인사에게 “정말 집값 잡을 수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이런 얘기를 했다. “경제학자 케인스가 주식으로 돈을 벌자, 한 대학이 그에게 재단 운영을 맡겼다. 그런데 손해를 봤다. 대학이 ‘당신 주식은 이익을 봤는데 왜 우린 손해냐’고 물었다. 케인스는 ‘재단은 내 경제학 지식을 총동원해 운영했고, 주식은 마누라 하라는 대로 했다’고 답했다.” 어처구니없는 답변이다. 집권 2년차에 다른 고위 인사에게 호언장담한 집값은 왜 못 잡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홍콩 등 다른 나라에 비하면 덜 올랐다. 아직 더 오를 여지가 있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경실련 발표 집값 상승 순위 10위 안에 들어갔다.
“지난 2년여 동안 집값 폭등 사실을 감추고 거짓 보고로 대통령과 국민을 속인 자들을 문책할 것을 요청한다”는 경실련의 요구는 좀 과할 수 있다. 하지만 능력 부족, 예측 착오, 정책 실기로 망친 건 따지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 규제 해제 탓, 일부 투기 가수요…. 한가한 말을 할 때가 아니다. 국유지에 토지임대부 주택을 때려 짓든지, 보유세를 억소리 날 만큼 물리든지 뭔가 하기를 국민들은 바란다. 민심은 계속 인내하지 않는다.
신승근 논설위원
skshin@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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