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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22 18:17 수정 : 2017.11.23 09:49

신승근

정치에디터

“기자들이 편하게 저녁 얻어먹으려고 눙치지 말고, 엄히 꾸짖어달라.” “법안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 손대면 안 된다.” 국민권익위 관계자의 목소리는 떨렸다. 권익위가 이낙연 총리에게 김영란법 개정안을 보고했는지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여론도 반대하고, 권익위도 반대하는데 어쩔 수 없이 떼밀려가고 있다는 뜻일 게다.

‘3·10·10’ ‘3·10·5’ ‘5·10·5’….

때아닌 숫자 놀이가 한창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의 핵심인 식사·선물·경조사 비용 상한액을 3만원·5만원·10만원으로 정한 현행 ‘3·5·10’ 조항을 바꾸자는 논의다. 누구는 선물 상한만 10만원으로 올리자 하고, 누구는 선물은 10만원으로 올리되 경조사비를 5만원을 낮추자 한다. 3만원 식사비 한도는 이미 사문화됐다며 5만원으로 올리자는 얘기도 있다. 법 시행 1년2개월 만에 개정은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외식·유통업계 활성화, 영세사업자와 농축산인 보호 등 동원된 명분은 차고 넘친다. 가장 강력한 논리는 ‘농축산인 보호’를 명분으로 한 선물 상한 10만원 인상안이다. 이낙연 총리가 총대를 멘 듯한 모습이다. 그는 지난 19일 양재동 하나로마트를 찾아 “정부가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을 논의 중이며 늦어도 설 대목에는 농축산인이 실감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설 전 선물 상한액 인상을 약속한 셈이다. 개정에 반대하는 박은정 권익위원장도 어쩔 수 없이 ‘5·10·5’ 안을 이 총리에게 보고했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식사비 상한을 5만원, 쌀·쇠고기·생선 등 1차 농축산물과 화훼작물에 한해 선물비 상한을 10만원으로 올리되, 경조사비는 5만원을 낮추는 방안이라고 한다.

국민 다수에게 개정 논의는 ‘뜬금없는’ 얘기일 수 있다. 3만원짜리 밥을 접대받거나, 5만원 넘는 선물이나 10만원 이상의 부조금을 받을 기회조차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농축산인 보호를 위해 선물비 상한을 10만원으로 올리자는 것은 더 이해할 수 없다. 솔직히 5만원이면 맛있는 사과, 배, 감 등 농산물 한 상자는 선물할 수 있다. 지난 9월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몇몇에게 정성을 담아 사과 상자를 보냈지만, 상자당 5만원을 넘지 않았다. 화환이나 난초도 마찬가지다. 종편채널에선 4만9900원짜리 화환, 난 광고가 넘쳐난다. 상조, 대출 광고만큼 자주 등장한다.

결국 상한선을 올리자는 건 한우나 갈비, 굴비 세트도 선물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일 게다. 그런데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나 해양수산부가 선물비 상한 10만원 인상은 어려움에 처한 관련 업계에 큰 도움이 안 된다며 더 올려달라 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고가의 농축산물 생산 업체를 살리려고, 공직자에게 뇌물을 주는 구조를 되살리는 꼴이 될까 우려스럽다.

결국 청와대가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의중을 잘 모르겠다. 최근 만난 청와대 핵심 인사는 “문재인 정부에 그런 장관급 한명쯤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총리와 여권의 압박에도 법을 고치면 안 된다는 소신을 유지해온 박은정 권익위원장을 높이 산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고민이 있다. 문 대통령이 늘 말씀하셨듯 (법의) 큰 근간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다만 농어민들에 대한 그런 생각도 갖고 계신 게 맞다”고 했다. 흠잡을 곳 없는 답변이다. 하지만 총리가 총대를 메고 풀어주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는 얘기 같기도 해 찜찜하다.

문재인 대통령한테서 직접 이런 말을 듣고 싶다. “박은정 위원장님, 좀 더 버텨주세요. 이 정부에서 그런 장관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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