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6.20 18:39
수정 : 2018.06.21 09:37
김회승
경제에디터
‘삼성바이오 사태’가 다음달 중순께 결론이 날 모양이다. 결론에 따라서는 시가총액 30조원대 회사가 자칫 상장폐지 될 수도 있는 중요 사안인데, 비공개로 심의가 진행되는 탓에 취재가 쉽지 않고, 복잡한 회계 문제가 쟁점이어서 이해하기도 까다롭다. 어제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세번째 심의를 했는데, 중요한 기류가 조금씩 흘러나온다. 종합해보면, 삼성바이오의 회계분식은 있었지만 고의가 아닌 과실로 결론이 날 것이란 얘기다. 덕분에 삼성바이오 주가는 10% 넘게 올랐다.
아직 최종 결론이 나진 않았지만, 몇 가지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이 사건은 금융감독원이 ‘고의적 분식회계’라는 잠정 결론을 내린 사안이다. 자문기구인 감리위원회를 거쳐 증선위에서 최종 판단해 제재를 한다. 형사사건으로 치면 검사 격인 금감원이 삼성바이오를 피의자 신분으로 기소한 셈인데, 삼성바이오가 상장을 위해 부적절하게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했다는 게 주된 혐의다.
가장 큰 문제는 증선위 심의가 온통 회계변경의 적법성에 치우쳐, 정작 회계처리 기준을 바꾼 과정과 동기 등 실체적 진실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증선위원장 말대로 “더 크고 넓게” 봐야 하는데, 콜옵션이니 공정가치니 지분법이니 하는 어지러운 회계 규정 공방이 되어버렸다. 이런 식이면 차라리 전문적 식견이 더 많은 감리위의 결정을 그냥 수용하면 될 일이다.
이번 사건이 주목을 받은 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 문제와 연관됐다는 의혹 때문이다. 삼성바이오의 상장과 가치평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즉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문제와 긴밀히 연관된 ‘빅 픽처’의 일부라는 의심이다.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 방식이 회계 규정과 기준을 따랐느냐 아니냐만을 놓고 심의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삼성바이오의 가치평가는 적절했는지, 부적절했다면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차근차근 따져봐야 한다. 회계변경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과 동기를 좇아야만 ‘고의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증선위 심의 과정에선 가치평가 등은 아예 제재 대상에서 빼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비회계적인 문제로 심의를 확대해야 고의성 입증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소수에 그친다고 한다.
이러면 결론은 뻔하다. 일반 범죄도 당사자가 부인하는 고의성을 입증하는 건 쉽지 않은 문제다. 증거와 정황을 체계적으로 맞춰 논증해야 한다. 그런데 범죄(분식회계)가 이뤄진 과정과 동기를 아예 조사도 않겠다니, 어떤 신공으로 고의성을 입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증선위 구성의 공정성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감리위원회 구성 때도 공정성 시비로 특정 인사가 제척됐는데, 증선위 역시 이해충돌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애초 삼성바이오 사건은 참여연대가 상장 과정에서의 특혜 의혹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그런데 현 증선위원장과 한 민간위원은 당시 적자기업인 삼성바이오가 상장할 수 있도록 규정 개정을 승인한 증선위의 일원이었다. 현 상임위원은 당시 담당 국장이었다. 증선위원 5명 중 3명이 과거 자신의 결정을 다시 심의하고 있는 셈인데, 이해충돌 문제에서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겠나 싶다.
현행 규정상 ‘(중)과실’과 ‘고의’는 하늘과 땅 차이다. 고의적 분식은 검찰 고발에 상장 폐지까지 갈 수 있는 중징계 사안이다. ‘고의성 없는 분식’도 무혐의는 아니니, 아마 금감원 체면도 세워주고 삼성 봐주기 시선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한데 도망가는 강력범을 잡았는데 신호위반 딱지만 떼는 교통경찰은 없지 않을까?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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