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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24 18:19 수정 : 2018.06.25 09:21

박현
콘텐츠2부문장

10여년 전 기획재정부 출입 시절 재정 관료들과 대화할 기회에 나는 선제적인 대규모 복지투자의 필요성을 자주 얘기했다. 복지를 찔끔찔끔 늘리는 수준으로는 심화하는 소득 불평등과 세계 초유의 저출산·고령화 현상을 타개하기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신혼집을 꾸리기 어려워 결혼을 미루고, 아이 맡길 곳이 없어 출산을 미루거나 아예 낳지 않는 청년층을 보면서 이들이 피부로 느낄 만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프랑스 사례를 예로 들며 아동수당의 도입 필요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관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우리의 재정 여력으로는 그런 복지를 감당하기 어려우며, 이미 우리가 도입한 복지 제도만으로도 30년 뒤면 복지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물꼬를 틀지 못하고 이렇게 30년을 끌려가면 오히려 상황이 악화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재정건전성’을 최우선순위에 놓는 관료들은 요지부동이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의 태도는 여전한 것 같다. 소득 불평등은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더 심화하는데도 말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소득주도성장을 새로운 경제철학으로 내세운 새 정부를 맞아 ‘적극적인 재정확대’를 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런데 최근 지난해 세수증가율 숫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정부는 ‘확장 재정’을 하겠다고 밝혔는데, 실제로는 ‘긴축 재정’을 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정지출 증가율 목표로 7%를 제시했으며, 이는 명목성장률(4.5%, 실질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을 웃돌기 때문에 확장 재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지난해 세수 증가율은 9.4%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 예상보다 무려 23조원이나 많이 걷혔다. 이런 정도의 초과 세수를 예상했다면 재정 지출을 더 늘릴 수 있었다는 얘기다. 정부가 민간에 푸는 돈(재정 지출)보다 민간에서 거둬들인 돈(세수)이 더 많다는 것은 정부의 재정 기조가 긴축 재정이라는 확실한 증거다.

선의로 해석하면, 기재부가 확장 재정을 의도했으나 예기치 않게 세금이 많이 걷혀서 결과적으로 긴축 재정이 됐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꼭 그럴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초과 세수 증가는 몇년 전부터 계속돼온 터라 기재부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는 기재부가 예상 세수를 낮게 잡아서 새 정부가 복지 강화를 하지 못하게 했다는 의심까지 할 지경이다. 올해 세금 걷히는 속도를 고려하면, 기재부의 이런 ‘꼼수 긴축 재정’은 내년에도 계속될 개연성이 있다.

긴축 재정의 부정적 효과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새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의 근간을 허무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재정확대와 분배개선을 핵심 정책수단으로 한다. 이를 통해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소비 여력을 키워줘야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이 가능해질 수 있다. 두번째는 경기를 위축시키는 역할을 한다. 지금 경기가 둔화 조짐을 보여 단기적 거시경제 관리가 필요한 시점인데, 긴축 재정을 펴면 경기 둔화를 가속화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런 긴축 재정을 기재부의 의도적 행동이라고 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청와대가 이런 행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여부다. 지난해 청와대 경제팀을 구성할 때부터 거시경제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일각에서 경제 컨트롤타워가 어디냐를 놓고 논란이 일었지만, 경제 컨트롤타워는 어디까지나 청와대이고, 기재부는 정권의 정책이념 실행을 책임지는 조직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재정정책의 기조를 잘못 설정한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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