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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29 20:32 수정 : 2018.07.29 22:32

석진환
사회1 에디터

싸움 잘하고 에너지 넘치는 동생은 틈만 나면 사고를 치고 다녔다. 머리도 좋아서 때만 되면 힘 좀 있는 이들과 잘 어울려 다니며 왈패질을 했다. 반면 형은 동생보다 공부도 잘했고 반듯하고 차분했다. 소란하지 않고 진중해 믿음직해 보였다. 그래서 부모는 차마 내칠 수 없는 동생에 대해서만 내내 골머리를 앓았다. 그 부모에게 지금 또 다른 ‘멘붕’이 오는 중이다. 모범생 형이 ‘뒤로 호박씨를 까고’ 다닌 행적이 걷잡을 수 없이 까발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믿었던 자식의 은밀한 배신은,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다른 수위의 실망과 분노를 부모에게 떠안긴다.

검찰(동생)이 수사 중인 법원(형)의 ‘사법 농단’ 사태를 보는 국민(부모)의 마음이 딱 이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검찰은 정권의 부침에 따라 욕을 참 많이도 먹었지만, 사람들의 마음 한편엔 ‘그래도 최후의 심판자’로서 법원에 대한 믿음과 존중이 있었다. 요즘 법원은 이런 소중한 자산을 한꺼번에 날려버리고 있다.

대법원이 저지른 수많은 ‘배신’ 중 소소한 사례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작년 6월, <한겨레>는 ‘법원행정처가 부산 지역 현직 부장판사의 심각한 비위 사실을 검찰로부터 통보받고도 징계하지 않고 변호사 개업을 하도록 눈감아줬다’고 보도했다. 보도 뒤 연락을 피하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정정보도 청구를 해왔다. 대법원도 임 전 차장과 같은 입장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당사자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 아래와 같은 문구를 해당 인터넷 기사 맨 아래에 추가했다. 요약하면, “임 전 차장은 법원행정처장에게 보고했고, 윤리감사관실에 지시해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부산고등법원장을 통해 경고조치가 이뤄졌다”는 내용이다.

경고조치로 끝낸 게 말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최고법원의 반론은 사실일 거라 생각했다. 최소한의 믿음은 1년 뒤 산산조각이 났다.

검찰이 최근 확보한 문건을 보면, 당시 행정처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대법관인 법원행정처장이 부산고등법원장에게 은밀히 전화해 사건 무마를 당부했다. 사실관계를 파악했다던 ‘윤리감사관실’은 무마 전화를 위한 ‘말씀 자료’를 작성했다. “검찰의 불만을 줄이기 위해 증인신문을 1~2회 추가” “처장이 법원장에게, 법원장이 재판장에게 연락한 사실이 배석판사들에게 새나가지 않도록 각별히 부탁” 등의 내용이 등장한다. 그리고 실제 말씀 자료는 그대로 실현됐다. <한겨레>는 지난여름 1면에 연이틀 기사를 쓰고도 대법원과 임 전 차장의 거짓말에 철저히 ‘농락’을 당한 셈이다.

돌아보면, 작년 <한겨레> 보도 이후 대법원 내부에 이런 사정을 알 만한 사람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심각한 ‘재판 개입’을 덮는 과정에서 판사들의 양심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 법원장에게 전화한 당사자로 의심받는 이는 지금도 대법관으로서 ‘최고 재판’ 업무를 하고 있다. 검찰이 부산의 재판 개입 사건을 다시 살펴보려 하자, 법원은 지난 주말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했다.

그뿐 아니다. 법원은 지금도 법원행정처 압수수색만은 절대로 안 된다고 버티고 있다. ‘국가의 중대한 이익과 관련된 공무상 비밀’ 등이 그 이유로 거론된 모양이다. 국정 농단 수사 때 ‘청와대 압수수색만은 절대 안 된다’던 박근혜 정부 논리와 똑같다.

대법원 특별조사단이 지난 5월 추려놓은 410개 문서 파일 중 아직 공개되지 않은 228건의 문건이 이르면 30일 공개된다고 한다. 또 얼마나 충격적인 내용이 쏟아져 나올지 두렵다. 더운 날씨만큼이나 벌써 숨이 턱 막힌다. 밀랍 날개로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갔던 신화 속 인물처럼, 법원은 앞으로 속절없이 추락할 것이다. 그 추락의 끝이 어디인지 아직은 누구도 모른다.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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