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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15 19:58 수정 : 2018.08.16 08:57

김회승
경제에디터

경제 관료의 핵심 요직은 청와대 경제수석,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 세 자리가 꼽힌다. 정권이 새로 출범하면 이 자리에 누구를 쓰느냐를 기준으로 경제 철학과 정책 방향을 가늠하곤 한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역대 정권 초기엔 경제 정책을 입안한 캠프 출신 학자 등이 포진하다가 1~2년쯤 지나면 하나둘 관료들로 대체되는 패턴을 보였다.

아마도 관료에 대한 불신이 가장 컸던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일 게다. 대기업 사장 출신답게 관료 사회의 비효율을 적폐로 규정하고 취임 직후부터 구조조정 드라이브를 걸었다. ‘공공부문 선진화’란 이름으로 공기업·공공기관을 대거 합치고 줄였다. 측근들 말로는 이 전 대통령이 “대기업 사장도 얼굴을 보기 힘든 은행장을 일개 사무관이 불러다 ‘대출을 줘라 마라’ 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금융위원회 초대 위원장에 민간 출신을 앉혔고, 공직을 떠난 지 한참 된 고령의 지인을 ‘엠비노믹스 기획자’로 기획재정부 장관에 기용했다. 하지만 불과 1년도 안 돼 다시 관료들을 찾았다. 그것도 3대 요직을 모두 모피아로 채웠다. 금융위기 파고에 광우병 촛불시위로 궁지에 몰린 때다. 노무현 정부도, 박근혜 정부도 ‘2기 경제팀’에선 대체로 관료들이 약진했다. ‘경제가 어렵다’는 현실론에 부닥쳐 문제해결 능력과 생산성이 높은 관료들에게 기대게 된다는 게 그럴싸한 해석이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가? 학자 출신 경제수석이 교체되면서 ‘빅3’에 모두 관료들이 들어선 모양새가 됐다.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청와대 핵심과 관료들의 갈등설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현 정부의 지지율과 경제 성장률은 이제 떨어질 일만 남았다는 이야기가 회자되는 때다. 진보진영 지식인들이 “‘늘공’(늘 공무원)들의 반격이 시작됐다”며 ‘관료 포획론’을 우려하는 까닭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제이노믹스 핵심 전략으로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혁신성장이란 ‘세 바퀴론’을 주창해왔다. 경중과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청와대와 정부의 행보를 보면, 고용과 투자를 늘리겠다는 명분으로 규제 완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규제 완화 실적이 부족하다는 건지, 내용이 부실하다는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문 대통령이 “성과가 부진하다”며 규제혁신 점검회의를 퇴짜 놓은 뒤부터 속도가 빨라졌다.

대통령이 직접 첨단 의료기기 업체와 모바일뱅킹 현장을 방문했고, 조만간 빅데이터 사업 현장도 둘러볼 예정이라고 한다. 모두 의료 상업화와 개인정보 보호, 은산분리 등 ‘공정경제’ 원칙을 훼손할 수 있는 사안이다. ‘대불산업단지 전봇대’처럼 뽑아내 제거하면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규제 완화는 박정희 정부 때부터 재계의 지상과제였다. 당시 재계 총수들은 관료들과의 신년 하례식에 사업에 장애가 되는 ‘규제 리스트’를 들고 가 민원을 하는 게 관례였다. 정부가 모든 인허가권을 틀어쥐고 진입 단계부터 시시콜콜 간섭하는 국가주도형 모델의 불가피한 산물이자, 정경유착의 출발점이었다.

경제학에서 규제 완화는 재벌과 관료의 독과점 체제를 깨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또 규제는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장치라고 배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규제 완화 담론은 ‘혁신과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과 ‘재벌 특혜이자 정경유착’이라는 두 개의 도그마가 작동한다. 옥석을 가리자는 주장은 양쪽의 강력한 자기장에 흡수되고 만다. 박정희 시대 국가주도형 산업화 모델을 극복하는 문제인데, 그 유산에 스스로 갇혀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되돌아봐야 한다.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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