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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12 18:34 수정 : 2018.09.13 13:56

김회승
경제에디터

2년 전, 내가 사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부산 아지매’들이 나타났다. 현금 수억원을 들고 아파트 원정 매매에 나선 갭투자자들이다. 서울을 한바탕 훑고 나서 외곽 신도시에 입성한 것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입지가 좋은 소형 아파트만 찾았다. 시세 3억원짜리 집을 전세 끼고 3천만원에 사들였다. 한달 동안 10억원으로 수십채를 샀다는 ‘큰손’ 이야기도 들렸다. 여윳돈 수천만원으로 “이 기회에 아파트 두채”에 도전하는 이들도 가세했다. 당시는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아파트 매맷값의 90%를 전세 보증금으로 세입자에게 떠넘기는 게 가능했던 때다.

요즘 서울 강남권의 미친 집값은 2년 전과는 차원이 조금 다르다. 시세차익을 노린다는 점에선 마찬가지겠지만, 전세나 대출을 끼지 않고 수십억원짜리 아파트에 뭉칫돈을 쏟아붓는다. 세입자도 모르게 집주인이 바뀌는 게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하니 강남권에서 집주인이 실제 사는 비율은 30%에 불과하다. 나머지 70%는 부동산 부자나 원정 매매 세력의 몫이다. 물론 ‘똘똘한 한채’를 움켜쥔 채 자신은 전·월세를 전전하는 이들도 있을 게다. 이런 시장판에서 수십년 푼푼이 모은 돈에 은행 대출을 얹어 내 집 마련에 나선 실수요자들은 설 땅이 별로 없다.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소 벽보에 부동산 매물이 붙어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강남 집값이 들썩일 때마다 농담 같은 상상을 해본다. 지하철 노선을 두어개쯤 걷어내고 공립 고등학교를 다 빼버리면 어떨까? 한 블록만 지나면 사통팔달 지하철이 다니고, 한해 수십명씩 ‘스카이’에 가는 고등학교가 있고, 케이티엑스(KTX) 출발역과 도심공항이 코앞에 있는 곳. 이런 환경에 살면서 자산도 불리는 현실에 대한 무력감의 소산일 게다.

끔찍한 건, 이런 욕망의 전투에 희생될 수밖에 없는 절반의 대한민국이다. 짧은 시간에 집값이 급등해 자연스레 전세율이 떨어졌으니, 얼마 지나지 않으면 전·월세 가격이 ‘키 맞추기’에 나설 것이다. 전·월세 재계약을 앞둔 무주택 세입자들에겐 공포와 다를 바 없다. 10억원짜리 내 집 마련은 꿈도 꾸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일터 근처에 살아야 하는 이들이다. ‘대출을 쉽게 받게 해줄 테니 그 돈으로 보증금을 올려주라’는 정부의 주거안정 정책이 과연 이들에게 위로가 될까.

부동산 대책이 통하지 않는 건, 우리 사회가 ‘정공법’을 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세계가 금융위기 이후 풀린 과잉 유동성을 줄이겠다고 나설 때 우리는 줄곧 뒷짐을 지고 있었다. 잠재성장률은 3%에 머무는데, 가계대출은 연간 8~9%씩 늘었다. 박근혜 정부 때는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에 부응하느라 그랬고, 지금은 새 정부의 부진한 경제 성적표 때문인가? 부동산 과열은 수년간 저금리에 매달린 혹독한 대가인데, 이젠 가계부채와 경기부진의 덫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나마 탄탄한 경상수지 덕분에 외화유출이 없다는 데 안도하는 신세가 됐다.

정공법은 말 그대로 단순하게 접근하는 거다. 좋은 물건은 비싸게 팔듯, 사용가치와 자산가치에 걸맞은 지급 구조를 만들면 된다. 집값은 3억원 올랐는데 세금은 5만원 늘었다는 보유세를 그대로 놔둬선 안 된다. ‘강남 아파트에 사는 70대 노부부는 집 팔아 세금 내란 말이냐’는 사연을 마치 내 일처럼 걱정해야 할까. ‘다주택자가 시세차익을 실현하도록 출구를 내줘야 거래가 뚫린다’는 사실상의 협박은 또 어떤가.

또 하나, 제발 섣부른 공급 대책으로 기름을 붓는 일은 말아야 한다. 그린벨트라도 헐어서 공급 부족에 대한 불안을 덜어줘야 한다는데, 판교, 위례에서의 경험을 벌써 잊었나? 미친 집값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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