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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28 18:32 수정 : 2018.11.28 22:28

이재성
탐사에디터

“이 정부는 엔엘 정부라 남북관계 개선에는 큰 관심을 보이고 성과도 내고 있지만 사회경제 개혁에는 의지도 실력도 없는 것 같다. 올 연말이 지나도 이런 식이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비판을 하려고 한다.”

진보진영의 한 저명한 교수가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청와대 주요 참모진이 분단 문제를 ‘주요 모순’으로 간주했던 엔엘(NL·민족해방) 계열 운동권 출신이어서 부동산이나 재벌, 노동 문제 등 ‘내부 모순’에는 개혁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사석이라 편하게 말했겠지만,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면서도 걱정하는 지식인들의 보편적인 심리 상태를 대변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대표적인 실책이 연출된 건 지난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부동산 폭등 국면이었다. 시장의 기대는 이미 보유세 강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는데, 세금폭탄론이 재연될까 우려해 미미한 방안을 내놨다가 혼쭐이 났다. 보수언론과 야당의 무조건적인 비판에 무릎 꿇은 결과였다. 일관된 철학 대신 여론 눈치보기로 임기응변하려다 시장의 보복을 당한 것이다. 결국 자신들의 경제정책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기득권의 비판을 두려워해서는 어떤 개혁 정책도 집행하기 어렵다는 교훈을 던진 사례였다.

민주노총에 대한 청와대와 여당의 파상 공세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 인상부터 노동시간 단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제개혁정책에 딴지를 거는 세력에게 덜미를 잡혀 총을 거꾸로 든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특히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탄력근로제 확대는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라는 ‘주 52시간 근무제’의 정책 목표 자체를 무력하게 하는 명백한 개악이라고 생각한다.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이라는 결론을 사실상 정해놓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민주노총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건 과도하다. 대체 언제까지 장시간 노동에 기반해야만 기업이 유지된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 분야의 혁신은 정부 주도보다는 기업의 필요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18세기 영국의 면화 산업이 방적기 발명을 비롯한 각종 기술혁신을 달성한 건 역설적으로 고임금의 압박 때문이었다. 선진국이 되는 과정은 결국 사람의 몸값이 비싸지는 과정이고, 산업구조조정도 그에 걸맞게 이뤄질 수밖에 없다.

언론들이 쏟아내는 단기 경제지표보다는 큰 틀에서 경제 체질을 어떤 식으로 바꿔나갈지가 중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내수 비중과 가계소득 비율은 여전히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특히 내수 비중은 갈수록 더 줄어들고 있다. 산업연구원도 며칠 전 내년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안정적 성장을 위한 강력한 내수 진작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수 비중을 높이는 가장 빠른 길이 노동소득을 올리는 일이다. 하지만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은 정반대다. 우리나라 노동소득분배율(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6년부터 2016년까지 20년 만에 10%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오이시디 비교 대상 20개국 가운데 하락 폭이 가장 컸다.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요즘 여기저기서 ‘이간계’ 주장이 유행이다. 수많은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정부의 처지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지금 정부가 이간계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보수언론과 야당의 줄기찬 비판에 자신이 없어지거나 길을 잃은 건 아닌지. 촛불집회 때 터져나온 경제민주화 함성을 기억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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