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09 18:35
수정 : 2019.04.11 17:43
김규원
전국에디터
2013년 월간 <스페이스>와 <동아일보>는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해방 뒤 지어진 최고, 최악의 건축물’을 조사해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새 서울시청(2012년 완공)이 최악의 건물로 선정됐다. 전문가들은 “주변과 조화되지 않고 외계의 건물 같다” “일제마저도 공을 들인 서울의 심장부에 우리 스스로 큰 실수를 범했다”고 혹평했다.
새 서울시청이 최악의 건물로 꼽힌 이유는 기존 시청이나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바로 앞에 있는 기존 시청은 새 시청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어야 하는 요소다. 그러나 반대였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과 유걸 건축가는 기존 시청을 고려하기는커녕 핵심 공간인 대회의장을 때려부쉈다. 새 시청을 짓는 데 기존 시청이 걸리적거린다는 이유였다. 일종의 ‘반달리즘’이었다.
이 조사에서 국회와 청와대도 최악의 건축물 6위와 7위를 차지했다. 국회의사당(본관, 1975년)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청와대 본관(1991년)은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공간 구성”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렇듯 해방 뒤 지어진 주요 공공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형편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곧 서울시청과 국회, 청와대와 함께 최악의 건물 평가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또 하나의 공공 건축물이 지어진다. 바로 정부세종청사 새 청사다. 이 건물은 3만7천㎡(1만1천평) 터에 전체 바닥면적 13만4천㎡(4만600평) 규모로, 2021년까지 3714억원을 들여 지어질 예정이다.
새 청사가 최악의 공공 건물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새 서울시청의 문제점과 같다. 기존 건물이나 주변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점이다. 기존 정부세종청사 본관은 최고 층수가 4~8층으로 낮고 곡선형이며, 15개 건물이 14개 다리로 연결돼 있다. 따라서 새 청사도 이런 특성을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새 청사는 높이가 14층으로 기존 건물의 2~3배이고 진부한 직선형 건물이며, 새 청사 본관과 기존 청사들은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문제점은 새 청사가 최근 논의 중인 제2 청와대나 제2 국회로 쓰일 수 없다는 점이다. 새 청사는 세종시와 정부세종청사의 한복판에 청와대나 국회가 들어올 가능성을 일찌감치 제거한다. 새 청사는 오직 행정부 청사로만 쓰일 예정이다. 이 대목에서 왜 문재인 대통령이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말했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왜 문 대통령은 북악산 아래 청와대에서 광화문 앞 정부서울청사로 나오려고 했을까?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주권자인 시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행정안전부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의 관료들은 세종시에서도 대통령과 국회를 또다시 북악산 아래 청와대 같은 곳에 모실(가둘) 작정이다. 그들이 청와대와 국회 터로 계획한 곳은 시민들로부터 뚝 떨어진 원수산과 전월산 사이 골짜기의 두더지굴 같은 곳이다. 현재 국무총리 공관이 있다. 이곳은 일제 때 미나미 지로가 외람되게 만든 조선총독 관저(청와대)와 비슷한 권위주의적 입지다. 세종시로 가더라도 대통령과 국회는 다시 시민들로부터 멀어지고, 스스로를 권위주의에 가둘 것이다. 과연 이것은 관료들의 음모일까?
이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공간 차원에서 두가지가 해결돼야 한다. 첫째로, 대통령이 북악산 아래 어두운 청와대에서 훤한 도심으로 나와야 한다. 둘째로, 국회의원들이 여의도 국회의 담장(특권)을 허물고 국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거기서부터 진짜 민주주의는 시작될 것이다.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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