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14 17:38
수정 : 2019.04.1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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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실에서 열린 최저임금 인상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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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달간 고용 실적이 호전되었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다. 2월과 3월 취업자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26만명, 25만명 늘었다는 소식이었다. 지난 1년간 계속된 고용 부진 현상이 조금이나마 완화되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보수언론들의 보도 태도다. 이들 언론은 지난 1년 내내 고용 동향이 발표될 때마다 고용 부진이 모두 최저임금 인상 탓이라는 이른바 ‘기승전 최저임금’ 논리를 전개했는데, 이번엔 최저임금 얘기를 쏙 뺀 것이다.
특히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대표적 근거로 제시됐던 숙박·음식점업 취업자는 약 1년 반 동안 지속되던 감소 추세를 멈췄다. 2월에 1천명, 3월에는 2만4천명 증가했다. 이 문제를 집중 제기해온 언론이라면 마땅히 이 업종의 취업자 수 변화에 어떤 요인이 작용했는지 정도는 따져보는 게 맞을 듯싶은데, 아예 이 업종의 취업자 수가 증가했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보도하지 않은 곳마저 있었다. 최저임금 인상이 마치 나라 경제를 결딴내기라도 한 것처럼 융탄폭격하듯 비판을 쏟아냈던 그동안의 보도 태도에 흠집이라도 생길 걸로 우려했기 때문일까.
지금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이 없었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부작용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우리 경제를 골병들게 한 만병의 근원처럼 주장한 보수언론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들 언론은 나아가 ‘최저임금 인상=소득주도성장’이라는 왜곡된 논리까지 동원하며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소득주도성장론도 의문의 일패를 당한 셈이다.
경제현상을 한층 엄밀한 방법론으로 진단하는 경제학계의 연구 결과도 보수언론의 주장과는 많이 다르다.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 영향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논문은 올해 초까지 다섯편 제출됐다. 이 중 네편(홍민기·황선웅·이병희·오상봉)은 고용 전반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추정했다. 한편(김대일·이정민)만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는데, 그것도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지난해 고용 감소 폭의 약 27%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김대일·이정민 교수의 추정을 받아들인다 해도 최저임금 인상은 지난해 고용 충격의 4분의 1 정도만 설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직 학계에서도 합의점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보수언론들이 과대포장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나머지 4분의 3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경기부진과 인구효과, 중국의 ‘사드 보복’ 등으로 설명될 수 있을 텐데 주목하고 싶은 것은 경기부진이다. 인구효과와 사드 보복 같은 구조적, 외교안보적 이슈는 재정당국이 단기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변수지만 경기부진은 대응에 따라 어느 정도 완충이 가능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2일 발표한 ‘2018년 국가결산보고서’는 재정당국이 경기부진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자료다. 이 자료는 보는 이의 눈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재정당국의 대응이 형편없었음을 증명한다. 이 자료는 “재정수지는 세수 실적 증가로 3년 연속 크게 개선되는 추세를 보였고, 국가채무는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증가를 보였다”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경기하강이 본격화된 마당에 긴축재정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경기가 부진할 때는 정부가 시중에 돈을 풀어 경기부양을 해야 하는데, 거꾸로 돈을 거둬들여 경기를 더 악화시켰다는 얘기다. 이는 경기하강에는 확장재정으로 대응한다는 케인스 이후 현대 경제학이 발전시켜온 거시경제이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태다.
현 정부는 보수언론과 재정관료들이 파놓은 두가지 큰 ‘함정’에 빠졌다. 보수언론은 ‘기승전 최저임금’ 프레임으로 정부의 사람중심경제 철학을 송두리째 흔들어놨고, 재정관료들은 ‘재정 보수주의’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며 정부의 돈줄을 옥죄었다. 음모론을 잘 믿지 않는 편이지만, 이 두가지 사안을 보면 기득권 수호 세력의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박현
신문콘텐츠부문장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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