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4.17 17:52 수정 : 2019.04.18 13:31

신윤동욱
사회정책팀장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다시 생각하면 참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 터키 배구리그에서 뛰는 김연경 선수의 경기를 보느라 밤잠을 설칠 때가 있는데, 반바지에 민소매 유니폼을 입고 뛰는 터키 여성 선수들을 보면서 문득문득 ‘참으로 아름답구나’ 느낀다. 대부분 이슬람 신도일 여성들이 입은 반바지 하나도 사회를 반영해서다.

터키는 이슬람을 믿는 국민이 대부분인 나라인데, 터키 여성들은 히잡을 쓰지 않을 뿐 아니라 팔다리를 노출하고 ‘심지어’ 어깨나 목에 문신을 새기고 경기를 한다. 국교가 이슬람인 중동국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터키의 종교가 국민의 일상을 제약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교분리 국가여서 가능한 일이다. 정교분리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배구를 보면서 ‘여성의 자기결정권 만세’를 되뇐다.

최근 자기 몸과 건강에 대한 결정을 자신이 내릴 권리인 자기결정권을 확대하는 결정이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1일 형법의 낙태죄 처벌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제 2020년 연말까지 자기낙태죄 등을 규정한 형법 269조 제1항을 개정해야 한다. 개발도상기인 1960~80년대 산아제한을 위해 사실상 임신중절을 조장해온 국가는 한편으로는 낙태죄를 유지하는 이중성을 보여왔다.

드디어 20세기의 독소조항 하나가 역사의 유물이 되었다. 민주화 이후 여러 문제에 대한 지적이 반복될 뿐 별달리 문제가 해소되지는 않는 이 사회에 사는 느낌을 ‘바이엘 100번을 100번 치는 느낌’이라고 말해왔다. 비교적 쉬운 피아노 교본을 끝없이 치는 느낌이란 것이다. 그렇게 공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가 중요한 한발짝 진전을 이뤄낸 것이다. 정체된 사회를 핑계로 많은 문제에 시큰둥해진 기자 같은 아재의 뒤통수를 죽비로 내려치는 일을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해온 여성들이 해냈다. 정부가 경제논리와 보수여론에 발목 잡힌 사이에 헌재는 사회 의제의 진전에 마침표를 찍는 결정을 내놓고 있는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에 이어 낙태죄 폐지는 정상국가의 ‘최소치’에 부응한다.

오랫동안 낙태죄 폐지를 위해 애써온 한 활동가는 이날의 결정을 앞두고 2012년 낙태죄 합헌 결정이 나오던 날, 헌법재판소 앞의 쓸쓸한 풍경이 떠올랐다고 했다. ‘합헌은 아닐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많은 이들이 몰려든 2019년과 달리, 충분한 사회적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날이 새삼스러웠을 것이다.

헌법불합치 결정에 활동가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군형법 제92조의6’이 생각났다. 군인의 동성 간 성관계를 합의 여부와 무관하게 처벌하는 이 조항에 대해 헌재는 2002년, 2011년, 2016년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합의된 관계도 처벌하는 이 조항은 2017년 법원에 의해 다시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됐고, 이전과 재판관 구성이 바뀐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헌재는 낙태죄 처벌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침해의 최소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군형법 제92조의6도 자기결정권 침해로 비판받아왔지만 사문화된 조항도 아니고 여전히 살아 있는 법이다. 2017년 대선 전후로 현역 육군들이 이 법으로 처벌당했고, 2018년 연말부터는 해군이 이 조항으로 군인들을 입건해왔다. 성폭력이 아니라 성인 간 합의된 성관계를 처벌하는 이 조항이 과연 국민의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전형적인 피해자 없는 범죄에 대해 ‘낙태죄 이후의 헌재’는 다른 결정을 내릴까.

중요한 결정이 나오는 날, 헌재 앞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 된다. 팽팽히 대립하는 양쪽이 손팻말을 들고 정문 앞에 북적인다.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말라고, 낙태죄를 폐지하지 말라고, 군형법을 유지하라고 주장하는 이들 상당수는 매번 중복 출연한다. 물론 이런 분들은 헌재 앞에만 있지는 않다. 불교계 대표자들을 만나도 합장을 하지 않고, 애국가의 하느님을 하나님이라 상상하고, 제헌의회가 기도로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제1야당 대표에 차기 대선 지지율 20%를 넘나든다. 다시, 정교분리가 누군가에게는 목숨 같은 원칙이다.

syuk@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편집국에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