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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8 17:58 수정 : 2019.09.08 19:16

이순혁
정치사회 부에디터

주변 어디를 가나 조국 이야기다. 누구는 그에게, 누구는 그를 향한 과도한 언론 보도와 검찰 수사에 분노를 표출한다. 그저 한숨만 내쉬는 이들도 있다. 평소 의견이 일치하던 사이건만 조국을 두고서는 다투더니 ‘보지 말자’며 등 돌리는 경우도 봤다.

우여곡절 끝에 인사청문회를 마쳤고 검찰은 검찰대로 그의 부인을 기소했으니, 이제 남은 건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할지와 검찰 수사에서 조국 일가의 불법이 얼마나 확인되냐다. 그 결과를 논할 예지력은 없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만으로도 그가 남긴 공과는 얘기할 수 있을 듯하다.

우선 공. 최근 한달 조 후보자와 그 가족들은 신상(실은 그 이상)이 탈탈 털리는 아픔을 겪어야 했지만, 사회적으로는 온 국민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잘 드러나지 않았던) ‘그들만의 리그’의 실태를 낱낱이 목격하는 의외의 효과를 봤다. ‘금수저’ 교수 엄마는 학부모, 대학, 직장 인맥 등을 총동원해 딸이 영어 논문을 쓰고, 표창장을 받고, 국내외 여러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줬다. 상류층에서 작동된 ‘내 자식 잘되게 만들기’ 실태가 이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이 있었던가.

사실 이 사안은, 조국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다. 따지고 보면 그 가족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교육부 조사에서, 대학교수가 미성년 자녀를 논문 공저자로 등록한 경우가 49개 대학 138건이 확인됐다(서울대가 14건으로 최다였다). ‘스펙 품앗이’보다 죄질이 더 나쁜 이 교수님들은 어떤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았을까. 또 그 논문은?

그뿐이 아니다. 인문사회 분야 한 박사의 말이다.

“학계에서도 금수저들이 라인을 타고, 대물림되는 사례는 수두룩하다. 유학파 부모를 둔 자식들은 네이티브 스피커라서 특례전형으로 대학을 잘 간다. 부모 인맥으로 ‘눈먼 돈’인 민간 장학금도 잘 받고, 적당히 능력 되면 유명인 추천 받아 전액 장학금으로 외국 유명 대학으로 유학 간다. 또 그 간판으로 국내 유명 대학 교수가 된다.”

봉사기관 연결과 추천 등 ‘스펙 다리 놔주기’를 통해 사교육시장을 주도하는 전업주부 엄마들에게서 왕따를 당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눈물겨운 교수 엄마 이야기도 있단다. 정치권·재벌·법조계·언론계에 비해 덜할(?) 것 같은 학계만도 이렇다.

대한민국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역동성을 잃어가고 있고, 그 자리를 세습이 대신해가는 중이다. 이제는 어려서부터 사는 세상이 갈린다. 국제중, 특목고 거쳐 좋은 대학에 가고, 그럴듯한 스펙을 쌓고, 유학도 다녀오고, 좋은 직장을 얻는 코스를 밟아온 이들이 흙수저나 목수저의 삶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한때 사회변혁을 주도했지만 이제는 기득권층이 된 (좌우 불문) 586세대가 이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조국 임명 여부와 별개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양한 계층이 섞여 교육받고 생활해 나갈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대야 하지 않을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사회를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가족을 희생시켜가며 이 문제를 환기할 기회를 준 조국에 감사하다.

다음으로 과. 조국이 ‘불법’도 아닌 ‘부적절’만으로도 혹독한 비판을 받은 이유는 언행 불일치 때문이다. 평소 입바른 말들이 부메랑이 돼 날아온 것이다. 상류층은 이번 사태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강남 부자면 강남 부자답게 살 일이지, 왜 평소에 사회정의 같은 걸 얘기해서 쯧쯧’ 아닐까.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계급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공동체를 고민하는 ‘강남좌파’들이 더 많아져야 하건만, 조국은 이들을 더 찾아보기 힘들게 만들었다.

사회적 발언이나 참여를 활발히 해온 이들이 공직에서 뜻을 펼 기회도 축소했다. 장관이라도 할라치면 온 가족의 신상이 탈탈 털리는 각오쯤은 해야 한다는 교훈을 줬기 때문이다. 기득권층을 불편하게 했던 이들일수록 그 교훈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스스로 지향해온 가치 확산을 가로막는 구실을 한 조국에 유감이다.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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