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08 18:23
수정 : 2019.12.09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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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4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외교장관 회담을 시작하기 앞서 기념촬영을 한 뒤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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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4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외교장관 회담을 시작하기 앞서 기념촬영을 한 뒤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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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예정일을 앞두고 미국 외교관들이 대거 서울로 모여들었다.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중국, 북한, 러시아만 기뻐한다.” “중국의 태도는 힘만 있으면 다 되고, 모든 것이 옳다는 태도다.” 모두들 중국 비판에 거침이 없었다. 미국의 공세 속에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이 발표되자마자,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한국에 왔다. 왕 부장은 문재인 대통령 예방, 외교 장관 회담, 우호 인사 초청 간담회 등에서 시종일관 미국의 “일방주의” “패권주의”를 작심하고 비난했다. 사드 문제에 대해서도 “사드는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서 만든 것”이라며 미국 탓을 했다. 사드 배치 결정 직후인 2016년 7월 아세안지역포럼에서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에게 “한국은 (한중) 양국 신뢰의 기초를 해쳤다”고 직격탄을 날리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이번 방한 내내 그의 말의 칼날은 미국을 겨냥했고, 한국을 향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장기적인 협력 파트너” “양국 무역이 3천억달러에 달하는 이익공동체”라며 우호적 신호를 보냈다. 한국식 자장면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강조하고, 3·1운동과 중국 5·4운동의 인연을 거론했다. ‘사드 사태’ 이후 5년여 동안 한국에 발길을 끊었다가 다시 방문한 그는 미-중 패권 경쟁이 격렬해지는 가운데 한국을 중국 쪽으로 끌어들이거나 최소한 ‘중립’을 선택하게 하려는 외교를 노련하게 펼쳤다.
지난 한달, 한국으로 몰려든 미국과 중국 외교관들을 취재하면서, 한국이 미-중 패권 경쟁의 전쟁터가 됐음을 실감했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가까운 한국을 향해, 두 강대국이 서로 ‘내 편에 서라’고 요구한다. 중국 말을 듣지 않으면 경제가 위태로워지고, 미국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안보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위협의 화살이 사방에서 날아들고 있다.
중국은 한국이 미국의 압박 끝에 ‘지소미아 조건부 연기’를 결정한 것을 보면서, 방위비분담금 대폭 증액이나 주한미군 감축 위협에 밀려 한국이 미국에 안보 전략과 관련한 더 큰 양보를 할까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왕 부장의 방한은 한국이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전면 동참하거나, 미국의 중거리미사일 배치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려는 것이다. 이제 ‘친미냐 친중이냐’의 논쟁은 부질없다. 한국은 외교 전략의 분명한 원칙을 정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자세로 나아가야 두 강대국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며 위기에 빠지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어떤 압박에도 한국의 좌표는 일정하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강대국들이 한국을 뒤흔들어 좌표를 바꾸려는 시도를 멈출 수 있다.
우선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을 압박하더라도, 근거도 없고 과도한 인상 요구는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데 미국 경제가 쇠퇴하고 있으므로, 부자 동맹 일본을 재무장시켜 미-일 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에 맞서려 한다. 그 틀 안에서 한국이 일본과의 과거사는 잊고 일본 아래로 들어와 한·미·일 3각 동맹을 이루고, 중국 견제 비용과 역할 기여도 늘리라고 요구한다. 한국에 요구하는 방위비분담금 50억달러(약 6조원)에는 주한미군과 관련 없는,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 비용을 분담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나아가 미국이 한국에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려 할 경우 ‘절대 불가’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1962년 소련이 미국의 문 앞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려다 3차대전 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불러왔던 것처럼, 중국의 문 앞 한국에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려는 시도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과 동북아를 재앙으로 몰고가는 것이다.
중국에는 중국의 급부상 이후 나타나고 있는 주변국에 대한 오만한 외교를 우려한다는 뜻을 밝혀야 한다. 중국의 ‘빅 브러더’ 사회 통제, 홍콩·신장 등에서의 인권 침해가 중국과 협력을 넓히고자 하는 한국의 선택지를 줄이고 있다는 메시지도 전해야 한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괴롭히는 것을 반대하고, 자신의 힘만 믿고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에 반대한다”는 왕이 부장의 발언은 미국에도, 중국에도 보편적 진실이다.
박민희 ㅣ 통일외교팀장
minggu@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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