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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에 입점한 면세점이 6일 오전 출국하는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세금 혜택을 누리는 면세점업이 국내에선 몇몇 재벌의 손에 장악돼 있다. 인천/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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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으로 흐르는 나랏돈] ⑤ 불공평한 세금 감면
세금 혜택 받는 면세점의 기형적 독과점
6조 면세점 시장에서 롯데·신라 매출 5조
홍종학 의원, 독과점 해소할 법 개정 추진
자동차를 몰고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신공항영업소를 통과하려면 7600원을 내야 한다. 만원짜리를 내면 거스름돈과 함께 할인쿠폰이 붙은 빳빳한 영수증이 돌아온다. 컬러로 인쇄된 영수증 앞면 절반 아랫부분과 뒷면의 거의 전부가 한 회사 광고다. 이 회사는 5000원짜리와 1만원짜리 할인쿠폰 2장 위에 “최다 브랜드 보유 신라면세점 할인쿠폰”이라고 쓰여 있다. 뒷면엔 “도심에서 즐기는 쇼핑, 신라면세점 서울점”이라는 선전 문구가 눈에 띈다. 광고료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신공항하이웨이㈜ 관계자는 “광고료 대신 신공항, 청라, 북인천 등 우리가 관리하는 3개 영업소에서 발급하는 영수증을 면세점에서 제작해 공급한다”고 말했다. 세곳의 하루 평균 통행량이 5만대가량 되는 점을 고려하면 해마다 약 1825만장의 영수증 겸용 광고 전단지가 뿌려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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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중기는 13.6%→3.9% 급감
부가세 면제 등 세제혜택 크지만
2012년 매출 1조에 특허료는 90만원뿐
법 바꿔 중견·중기 특허수 늘렸지만
매장 큰 롯데·신라 매출 더 늘어
민주 홍종학 의원 재개정안 계류중
재벌들, 통과저지 로비·여론전 나서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재벌 대기업한테도 면세점 시장의 진입 문턱은 아주 높다. 조선호텔에 ‘유통 공룡’ 신세계의 면세점이 있고, 워커힐호텔에 있는 재계 3위 에스케이의 계열사 면세점이 각각 하나씩 있지만, 이들 면세점이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에 그친다. 2년 전 홍종학 민주당 의원이 이런 문제를 제기했을 때 커다란 지각 변동이 예고됐다. 그는 관세법 개정안을 내면서 “면세점이 대기업 독점으로 운영되면서 외국 제품 위주로 판매하고 있고, 특허료를 매출액의 30만분의 1 수준만 납부하고 있다. 소수의 기업에 국가 징세권을 포기한 채 특혜를 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대선 전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홍 의원이 발의한 관세법 개정안도 어려움 없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정부는 법 취지를 살릴 시행령을 만들었다. 시행령엔 면세점 총 특허 수의 20%(2018년부터 30%) 이상을 중소·중견기업에 주고, 재벌 대기업(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기준)에 총 특허 수의 60% 이상을 부여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홍 의원의 애초 제안인 “면세점 특허의 50% 할당”보다 느슨해진 것이긴 하지만 의미 있는 성과처럼 보였다. 또 10년이던 특허기간도 5년으로 줄고, 대기업의 특허료도 매출액의 1만분의 5로 늘었다. 롯데와 신라의 독과점 구조도 조만간 깨질 기세였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두 재벌의 독과점 체제는 금도 가지 않은 채 거꾸로 더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한겨레>가 홍종학 의원실을 통해서 관세청으로부터 받은 면세점 매출 자료를 분석해봤더니, 2013년 1~9월 롯데와 신라의 매출이 전체의 83%를 차지했다. 법 개정 전인 2012년 말보다 두 기업의 독과점 비중이 2%포인트 더 늘어난 것이다. 경제민주화에 대기업들이 앓는 소리를 했지만, 그들의 ‘파이’는 되레 더 커졌다. 이는 특허가 만료되지 않은 이상 기존 매장을 유지할 수 있는 등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특허 수를 기준으로 재벌이 누린 특혜를 재분배하려 한 정부 정책의 문제였다. 신라와 롯데의 면세점 수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6%로 적지 않다. 그런데 매출액 비중은 그보다 훨씬 높은 전체의 약 83%에 이른다. 바로 이 간극에 답이 있었다.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하는 여행객은 출국심사 뒤 눈이 어지러울 만큼 즐비하게 늘어선 매장을 마주하게 되지만, 그 많은 매장의 주인은 딱 3개 회사다. 이들 회사가 각각 하나씩의 면세점 특허를 갖고 있다. 그 가운데 롯데(롯데DF글로벌 포함)와 신라의 면세점 매장 면적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는 관광공사 몫이다. 애초 매장 면적을 놔둔 채 중소·중견기업의 면세점 특허 수를 늘린다고 재벌 면세점의 독과점 체제가 쉽게 흔들릴 문제가 아니었다. 동네 슈퍼 10개가 대형 할인마트 하나를 못 당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수도 결코 적지 않지만, 무엇보다 면적이 넓고 고객이 많은 알짜 면세점이 거의 다 재벌 소유란 게 근본적 문제였다. 두 재벌의 독과점 체제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홍 의원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정부 시행령으로 위임했는데 정부가 입법 취지의 근간을 왜곡했다. 비율 규제의 기준을 면세점 면적이 아닌 특허 수로 하면서 재벌 기득권을 옹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0일 뒤 그는 관세법 개정안을 다시 냈다. 매장 면적 기준으로 특허의 30%를 중소기업에 부여하는 내용을 담았다. 법 개정을 제안했던 당사자가 취지가 왜곡됐다면서 1년 만에 다시 개정안을 내는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다. 그는 <한겨레>에 “재벌 대기업은 지금도 정부 시행령에 있는 전체 면세점(특허) 수의 60% 제한을 충족하고 있다. 따라서 롯데와 신라, 두 회사는 제재를 하나도 받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이 다시 개정안을 내자, 재벌들은 자못 긴장한 눈치다. 재벌들은 개정안 통과 저지에 사력을 다했다. 롯데 사장과 신라의 전무가 홍 의원을 찾아왔고, 그는 지인을 통해서도 로비를 받았다. 재벌 면세점은 또 한편으로 중기 면세점 지원과 중기 제품 판매 확대 노력 등 구애를 펴면서, 비판 여론을 잠재우는 데도 힘을 쏟았다. 그는 “이런 일들은 예상됐던 일이다. 수천억원이 걸려 있지 않냐. 면세점은 국가가 관세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 권한을 거의 다 롯데와 신라만 가져가냐. 이건 특혜다”라고 말했다. 현실론은 두 재벌의 특혜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논리다. 주태현 기획재정부 관세제도과장은 “지방에 7개의 중기 면세점이 오픈(개점)했는데, 대부분 적자다. 이런 현실에서 중기가 대기업을 대체하기란 쉽지 않다. (홍 의원 제안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기에 특허를 할당하려다 자칫 외국계 기업에 좋은 일만 시킨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 세계 2위 면세점 업체 듀프리의 ‘자회사’로 의심되는 듀프리토마스줄리코리아가 중견기업 확인서를 받아 김해공항 내 중소·중견기업에 할당된 매장을 입찰에서 따내기도 했다. 또한 중기에 면세점을 내준다 해도 비싼 공항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다거나 국외 명품은 고사하고 국내 유명 제품을 안정적으로 받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 중기 면세점 업체 이사는 “유명 브랜드 입점 없이 지속적 생존은 어렵다. 정부와 관세청, 대기업, 유명 브랜드 국내 에이전트(대리인)가 합동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외국계 기업의 입점에 대해선 미비한 제도의 보완과 중소·중견기업 임대료에는 상한선을 책정하는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중기가 당장 하기 어렵다고 재벌의 독과점을 그대로 용인한다면 이들의 지배가 반영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 의원이 지난 11월에 낸 개정안은 결국 통과되지 못한 채 해를 넘겼다. 그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남은 의원 임기인) 2년 더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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