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25 20:00
수정 : 2006.07.25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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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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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타협과 합의는 관련 당사자들의 동의를 전제하지만, 동의에 이르는 과정과 추구하는 목적은 서로 다르다. 타협은 협상을 통해 이해득실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을 찾아 협정을 맺는 것이다. 반면에 합의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서로 연대할 수 있는 공동의 목표와 가치를 찾아가는 사회통합의 원천이다. 타협은 이익과 손해를 조정하는 것이지만, 합의는 소통을 통해 뜻을 모으는 것이다.
합의에서 소통은 과정이고 목적이지만 타협에서는 수단일 뿐이다. 타협을 목표로 협상에 참가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손익관계에 대한 나의 계산 방법을 수용하도록 유도하거나 강제한다. 뛰어난 협상가는 자기편의 이익보다 상대편의 이익이 큰 것처럼 말한다. 협상가는 때로 미래의 전망을 내세운 약속도 하지만 물리적 자원을 동원해 위협도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협상에서 설득의 힘은 더 나은 논증이 아니라 협상 공간 밖에서 동원할 수 있는 물리적 힘에서 비롯된다. 강자는 물리적 자원을 가지고 상대편을 위협하거나 강제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약자는 불가능하다. 약자는 협상에 앞서 끝없이 약속할 수밖에 없지만, 이는 협상의 외투를 걸친 굴욕일 뿐이다. 그렇다면 약자가 동원할 수 있는 힘은 없는가?
국가간 협상에서 강자는 협박할 수 있지만, 약자는 소통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약자가 가질 수 있는 의사소통의 힘 역시 협상공간 안이 아니라 밖에서 온다. 약자는 소통을 통한 국민적 합의를 가지고 협상의 장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 노무현 정부는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을 포기한 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있다. 타협과 합의의 차이를 무시하는 처사다.
미국처럼 초강대국과 중요한 협상을 하려면 먼저 의사소통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낸 다음, 여기서 형성된 의사소통적 권력을 가지고 때로는 위협하고 때로는 약속도 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거꾸로 하고 있다. 미국과는 합의를 하려고 하고, 국민과는 협상을 하려고 한다. 미국과 합의한 선결 과제로 국민을 위협하거나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면서 설득하려고 한다. 대통령은 홍보가 부족해 국민이 오해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국민은 홍보의 대상이 아니라 소통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 이 나라의 주인이다.
현재 협상이 진행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관한 찬반 논의는 주로 손익계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찬성하는 사람은 이익을 강조하고, 반대하는 사람은 손해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 협정은 단순히 경제협정이 아니라 초국적 자본을 무기로 한 경제통합이며, 근본적으로는 시장에 의한 사회와 정치의 지배를 의미한다. 시장은 효용성이라는 하나의 원칙이 지배하는 곳이다. 시장에는 소통도 선거도 없으며 오직 더 많은 이익을 향한 무한경쟁만이 있다. 경쟁은 필요한 것이지만 원칙 없는 무한경쟁은 하층민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계층을 몰락의 항구적 위협에 노출시킨다. 손익계산만을 할 때가 아니다. 그보다 먼저 시장이 지배하는 무한경쟁 사회가 우리가 바랄 만한 미래 사회인지를 두고 소통해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더 많은 경제적 이익과 관련된 양의 문제이기에 앞서 삶의 질과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참여와 소통을 통한 합의 과정 없이 국민의 저항에 맞서 정권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폭력이다. 참여정부는 국민적 소통이란 힘으로 권력을 창출했지만, 참여와 소통을 막으면서 권력을 잃어가고 있다. 참여정부는 폭력정권이 돼 가고 있다.
박구용 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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