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30 21:34
수정 : 2006.07.30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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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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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포항건설 노조원이 포스코 본사에 들어가서 농성한 일은 현행법에 저촉되는 ‘불법’이다. 형식적으로 보자면 이들은 자신들의 사용자가 아닌 제3자에게 협상을 요구한 것이 되었지만, 모두 알다시피 이들은 전혀 엉뚱한 남의 집에 쳐들어간 건 아니다. 한 보수신문 칼럼에서는 자신들을 먹여살리는 주체를 인질로 잡았다고 비난하지만, 농성 근로자들이 먹고살 수 있느냐 없느냐는 전적으로 포스코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노사문제는 비정규직을 둘러싼 갈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비정규직과 관련된 노사갈등이 풀기 어려운 과제가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누가 노동자이고 누가 사용자인지부터 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니 이를 정하는 것 자체가 다툼의 핵심이다.
이번 포항건설노조 사건은 필자에게 한국고속철도(KTX) 여승무원 사건을 상기시킨다. 고속철 여승무원들을 한국철도유통이나 케이티엑스관광레저의 직원으로 두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철도공사에서 직접 고용하는 것이 옳은지를 다툰지가 벌써 1년 반을 훌쩍 넘기고 있다. 경영진으로서는 서비스의 일부를 외부에 위탁해서 더 많은 이윤을 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을 것이고, 이런 이유로 외부위탁을 하는 것이니만큼 부가가치가 높은 업무냐 그렇지 않은 단순업무냐를 기준으로 위탁할 업무를 결정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불법파견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이와는 다르다. 승무원이 고속열차의 핵심업무인 안전문제를 담당하고 있고 이 업무를 수행하는 데 철도공사의 정규직원인 열차팀장의 지휘가 필요하다면, 이를 외부에 위탁하는 것은 불법이다. 승무원이 안전에 관련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은 ‘이례적인’ 상황이며 일상적으로는 단순히 승객의 편의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주된 업무라는 철도공사의 주장은 외부위탁의 정당성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승객을 대피시켜야 하는 위기상황이 이례적이라도 이에 대한 준비나 책임은 항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을 둘러싼 문제들은 우리 사회의 갈등과 긴장의 수위를 높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고 여기서 발생하는 비용은 어차피 국민 모두의 짐이 될 것이라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정부가 수년간에 걸친 노력으로 비정규직법을 준비하였다고 하는데, 이해당사자들은 이 법을 거부하고 있다. 법의 취지가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고 부당한 차별로부터 비정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 왜 그럴까? 계약직의 반복적인 재계약을 하지 말라고 하면 그동안 일해온 계약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해고하고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동일한 노동에 대한 차별적인 처우를 금지한다 하면 업무를 위탁회사에 넘겨놓고 우리 회사 근로자가 아니라서 모르겠다고 나와 버리는 예들을 지금껏 보아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비정규직법이 환영받지 못할 뿐 아니라 국회 통과도 어려워 보이는 상황에서 이 법의 정신을 공공부문에서 먼저 실현해 보임으로써 문제해결의 의지와 진정성을 인정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법’ ‘대책’ 이런 것들과 함께 모범적인 문제해결 사례를 보여주어야 한다. 상시업무는 정규직화하고 차별을 근절하며 업무를 외부위탁할 때는 분명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비정규직법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의 정신이라면, 이런 정신에 근거한 문제해결의 수범사례로 고속철 사례를 해결해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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