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8.03 18:47 수정 : 2006.08.03 21:28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

세상읽기

지난해 광복절은 무려 422만명이라는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사면으로 얼룩졌다. 그간 90회에 이른 사면의 역사는 우리 법체계의 후진성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더욱이 민주화의 최대 수혜자인 참여정부가 사면이라는 제왕적 권력을 권력수단으로 삼고 이를 국민통합이라는 권위주의적 슬로건으로 은폐하는 행태는 차라리 역사의 퇴행이라 할 것이다. 이 부정의의 향연은, 이제 그 명분마저 포기한 채 정치적 타산만으로 일관하는 면죄부 바겐세일로까지 이어진다.

실제 우리나라는 가진 자에게는 영원한 면죄가 약속된 땅이다. 한 방송사가 보도하였듯, 음식배달원이 자장면값 몇 번 챙겨 횡령한 것은 상습범이니 누범이니 하며 구속하고 실형에 처하는 검찰과 법원이, 회계를 분식하고 수십·수백억원의 비자금을 만들어 법과 경제를 어지럽힌 기업의 총수들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불구속기소에 집행유예로 일관한다.

여기서 두 개의 법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내달린다. 형법은 수십·수백만원을 횡령하는 무지렁이들을 가차없이 처단하지만, 정작 경제비리를 거악으로 보고 ‘특별처단’하려고 만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은 오히려 경제를 빌미로 재벌이나 기업총수에게 한없이 관대한 솜방망이 법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이 땅에서 이미 현행의 법이 되었다. ‘소액을 횡령한 죄’는 엄중처벌되는 반면, 상상을 불허할 정도의 ‘고액을 횡령한 죄’는 적발되는 순간부터 ‘죄 사함’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모자라서 정치권은 한술 더 뜬다. 경제활성화니 민생경제니 하는 거창한 카피를 내세우며 사면이라는 면죄부를 떨이판매하고 나선다. 분식회계, 횡령, 비자금 조성, 탈세, 주가 조작, 경영권 편법승계 등 수많은 비리행위들이 그 자체 한국 경제를 천민적이고 파행적인 것으로 만든 주범이자 사회적 질곡의 원천이라는 사실은 그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혹은 경제의 양극화가 법 적용의 양극화로 귀결되는 현재의 상태가 예의 ‘국민통합’을 통째로 갉아먹는 암종임은 아예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단지, 이미 풀려나 거리를 활보하는 경제사범들에게 그나마 남은 집행유예의 죄책마저도 떼어주는 대가로 약간의 투자를 이끌어내고 이로써 현 정부의 경제실정을 만회해 보겠다는 안쓰러운 몸부림만 떠돌아다닐 뿐이다.

주지하듯, 절제되지 아니한 사면은 법치에 대한 거역이다. 그것은 사법의 권위를 부인하는 동시에 준법을 준칙 삼아 묵묵히 살아가는 일반국민의 신뢰를 배신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정치적 책략에 따른 사면은 새로운 정경유착의 틀을 만들어내고 이 통로를 따라 경제권력이 국가를 장악하게 될 위험조차 야기하게 된다. 법의 견제조차도 받지 않는 자본의 논리가 정의와 형평의 원칙을 압도하며, 정치는 이 시장의 역학관계를 적나라하게 대변하는 대리인들의 각축장으로 전락하고 마는 질곡의 현실이 머지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의 사면 논의는 은전의 책략으로 시종하였던 지난날의 사면들과는 달리 무척이나 위험하다. 그것은 이미 철학을 상실한 현 정권의 경제정책이나 맹목으로 치닫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과오들을 확대재생산하는 촉매가 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사면의 국면을 계기로 그동안의 정치민주화 성과들이 일거에 뒤집혀 버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 위험한 것이다. 하지만 면죄부는 거래될지언정 면죄는 거래될 수 없다. 이 땅에서 진정한 약속은 두 눈 부릅뜬 민심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