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06 21:12
수정 : 2006.08.06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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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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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0·26 사태에서 5공화국 전반기에 걸쳐 대학 시절을 보낸 사람에게 한나라당을 수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전두환’이라는 직업군인을 결코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는 죄과로 징역, 강제징집, 의문사 따위에 인생 망가진 친구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두환의 후신 한나라당에 박근혜, 이명박 두 인물이 부상하면서 박정희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는 현상을 보인다. 사태는 복잡해진다. 이 땅에서 살아온 한, 설사 박정희를 미워할 수는 있으되 그 존재감을 부정할 도리는 없기 때문이다. 박정희 그림자는 한나라당의 두께감을 높여주는 긍정적 요인이 된다.
지금 한나라당은 창당 이래 최대의 국민적 성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는 이 현상을 진보 피로감이라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집권당의 지리멸렬함에 따른 반사이익만은 아닌 것 같다. 어떤 기대감, 그러니까 경륜과 국민통합 능력 및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치가 한꺼번에 쏠린 것이다. 아무리 부자 몸조심을 보여도 한나라당 구성원의 득의한 표정은 도처에서 목격된다.
이제 모든 관심은 차기 대선으로 모일텐데 한나라당은 더 행복해해도 좋을 것 같다. 당장 나 같은 한 표조차도 정상적인 선거를 통해 한나라당이 집권한다면 현실로서 수용할 태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현재 모습만으로 집권이 가능할까?
모처럼 신문, 텔레비전, 인터넷 없는 휴가 닷새를 즐기고 돌아오는 날 텔레비전을 켜고 말았다. 국회 교육위원회 회의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김병준 교육부총리에 대한 청문회였다. 국산 청문회가 늘 그렇지만 ‘범죄 피의자’ 대 강력계 형사의 취조 장면이 펼쳐졌다. ‘피의자’와 같은 학자 출신임을 극구 강조하는 한나라당 여성 의원은 대놓고 곡만 안했다 뿐이지 하늘이 울고 땅이 꺼지는 울분을 연신 토해냈다. 하지만 그 의혹의 대부분은 ‘조사하면 다 나와’에 해당되는 단순사실들이었다. 장차 조사를 해서 밝히면 되는 일들 아닌가. 그러나 진실규명은 질의자의 관심 밖인지 그저 요란스레 호통을 칠 뿐이었다.
텔레비전 앞에서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 연예인과 정치인의 숙명이라면 묻고 싶다. 꼭 그렇게 ‘그악스러운’ 연기를 해야만 옳은가. 대체 ‘야성’을 회복해야만 한나라당이 산다는 주장은 무슨 근거가 있는 걸까. 야성 회복이라는 단말마의 카타르시스로 결집되는 전통 지지층 30%만으로 집권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걸까.
‘청문회 취조실’에서 그 중 이성적이고 소통이 가능해 보이는 인물은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이었다. 그는 이 전방위적 ‘쥐잡기’를 억울해하는 부총리에게 먼저 많은 이해를 표했다. 그리고 주 의원은 말했다. 당신네들, 열린우리당이 집권할 때 이회창 후보에게 가했던 부당한 핍박을 되갚음 받고 있는 거라고. 주 의원처럼 대화 가능한 한나라당 사람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그런 되갚음, 즉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부터 건너뛰시라고.
한나라당은 ‘진보정권 10년’의 세월을 ‘노비들이 안방 차지했네, 전라도가 말아먹었네, 빨갱이가 설치네’ 따위로 말하는 수준의 한맺힌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야 진정하게 외연을 넓힐 수 있다. 앞으로 우리가 바라는 집권당은 국제감각, 시장원칙의 준수, 무엇보다 통합적 가치창조 능력을 보여주는 정당이지 보수와 진보 어느 한 쪽의 양자택일이 아니다. 부디 남은 기간 그악스러운 야성 대신 박정희 이래 40년간 축적되어 온 경륜의 두께감을 점잖게 보이시라. 뜻밖의 한 표들이 마음을 열지도 모른다.
김갑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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