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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립 경성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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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쟁에다가 ‘카스트로 이후’의 쿠바 대책이 겹치는 바람에 미국의 관심이 북한을 잠시 떠난 것 같지만, 어쩌면 지금이 한반도 국제정치의 기로일지 모른다. 그동안 행간에서나 감지되던 중국 대북정책의 변화가 여름부터 가시화한 것이다.안보리의 대북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직후 중국은 전에 없던 협조에 대한 미국의 치사를 들으며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의 북한 계좌도 동결했다. 뒤이어 중국은 위폐 문제 등에 함께 대처하기로 하는 양해각서를 미국과 체결했다. 북한에 혐의를 둔 위안화와 달러화 위조문제에서 미국과 공조한다는 것은 중국의 북한 전략 기조가 사실상 바뀐다는 신호다. 게다가 중국 외교부는 새 평양 대사로 차관보급 미국통을 내정했다. 미묘한 시점에 미국통을, 그것도 고참 차관급을 파견해 온 관례를 깨고 차관보급을 내정한 것이다. 이 모든 조처는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북한에 경고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건 하나에 발끈해서 외교적 복선도 없이 ‘단타 외교’를 구사할 중국은 아니다. 중국의 메시지는 대북 관계를 지금부터는 대미 관계에 부수시키겠다는 것이다. 불편한 외교적 발언은 말 대신 이렇게 하는 것이다.
미국과의 화평이 경제발전의 필수 조건인 중국은 자신의 개입이 불가피한 북-미 군사 충돌과 일본의 핵무장을 부를 북한 핵도 막아야 하지만, 미국이 북한을 단독으로 무너뜨리는 것도 막아야 한다. 또 중국한테 북한이 ‘양보할 수 없는 대만’도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북-미 대결의 해법이 희미해질수록, 중국은 북한 뒤에서 미국을 막는 수비 전략에서 북한을 미국 세력권 밖에 두는 조건으로 미국과 북한 문제를 타협하는 적극적 대미 공조로 전환할 가능성이 커진다.
어떤 방식으로 북한 문제를 매듭짓든 미국 또한 중국과의 공조가 필수적이다. 몇 해 전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의 ‘북한 정권 교체 메모’에서 중국과의 협의를 명시한 것과 지난해 9월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만나 “미국과 중국 둘 다 좋은 한반도 시나리오를 생각하자”고 한 것은 모두 같은 맥락이다. 21세기 미국의 전략 지침서인 <펜타곤의 새 지도>의 저자 토머스 버넷이 그 속편으로 낸 <실행 계획>(Blueprint for Action)에서 제시한 북한 관련 시나리오도 한반도 주변 4강이 ‘김정일을 공동 제거’한다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는 중국을 주적으로 보지만 국방부가 총애하는 전략 고문은 중국과 함께 북한에 개입하는 시나리오를 내놓은 것이다. 이 예측을 개인적 희망의 표현으로 볼 사람도 있겠지만, 절대 목표인 미국 안보를 확보하는 길은 세계화에 저항하거나 뒤처진 나라들을 민주국으로 변환시키는 것뿐이라는 워싱턴의 철학에 투철한 시나리오를 워싱턴 강경파의 희망 정도로 넘겨서는 곤란하다.
아직 최종 파산하지는 않았지만, 6자 회담의 파산이 기정사실로 되고 미국과 중국의 ‘한반도 프로젝트’가 한국을 우회해서 가동되면 21세기 한반도 시나리오는 우리 손을 떠난다. 특히 주변국들은 안보리 대북결의안 추진 협의 과정에서 안보리 이사국은 아니지만 일차적 당사국인 한국을 남북관계를 ‘배려’해서 배제함으로써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 외교의 발언권을 거부했다. 외교적 복선 구축에 미숙한 ‘통일 외교’로는 한반도 문제를 주도해야 할 한국의 국제적 발언권이 오히려 제약된다는 역설이다. 북한 문제를 대하는 중국의 대미 기조 변화가 ‘그들만의 공조’의 서곡이 되게 하지 않으려면, 한국은 우선 이 기막힌 역설부터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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