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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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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외교를 싸움으로 만든 사나이.”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고이즈미 외교 5년을 총괄한 책자의 타이틀이다. 일본어 원어로는 ‘겐카’란 단어다. ‘싸움’으로 번역되지만 아이들의 ‘주먹다짐’이나 ‘말싸움’과 같은 어감에 가깝다.후임 총리가 확실시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도 ‘싸움’을 내걸고 있다. 그의 정권 구상을 정리한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의 첫 페이지는 ‘싸우는 정치가’라는 단어로 시작된다. 일본에는 신념이 없고 싸움을 피하며 몸을 사리는 정치가가 너무 많다는 전투적 선언이다. ‘아베 총리’의 국가와 국민을 위한 ‘싸움’이 어떤 내용과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한국으로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아베 관방장관은 지금까지의 발언이나 행동으로 볼 때 현재 일본 정치가 중에서는 가장 우파에 속한다. 우리가 일본의 ‘우경화’ 또는 ‘우파’라는 말을 할 때, 그 내용에는 여러 요소가 섞여 있다. 크게 경제적 우파, 현실주의적 우파, 군사적 우파, 이념적 우파의 넷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경제적 우파란 대내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 대외적으로는 자원과 시장 획득 등 재계의 이해를 반영하는 입장이다. 현실적 우파는 ‘국제공헌’과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부류로, 복고주의적 역사관은 다소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군사적 우파란 일본의 군사력에 대한 물적 제도적 제한의 철폐에 중점을 둔다. 한편 이념적 우파는 복고적이고 전통적인 가치와 이념을 강조하는 것으로, 일본판 ‘종교 우파’라 할 수도 있다. 이들 네 흐름은 물론 서로 겹치고, 정치인 개인의 사상과 행동 속에도 여러 요소가 섞여 있다. 그러나 이를 구별하고 분석하는 것이 대일관계와 외교를 생각하는 데는 필수적이다.
예컨대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의 고집스러운 참배로 한국민의 눈에는 철두철미한 우파 정치가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그의 정책이나 행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제적 우파의 측면이 두드러지고, 이념적·군사적 우파의 모습은 약하다. 일본의 대표적 ‘우파’ 언론인 〈요미우리〉나 재계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비판하는 것은 이념적 우파의 언동이 일본의 국익을 해치고 있다는 현실적 우파, 경제적 우파의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이제까지의 발언과 행동만으로 판단할 때는 아베 관방장관은 이념적·군사적 우파에 가깝다. 경제개혁보다는 개헌, 애국심을 강조하는 교육기본법, 공격능력의 보유 주장에 힘을 기울여 왔다. 일본 내에서도 이런 점들이 보수 본류와 재계의 우려를 낳고 있다. 물론 실제로 정권을 맡으면 현실적 균형을 취하는 경향이 나타날 것이다. 야스쿠니 문제도 타협책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중국에 대해서도 ‘정경분리’를 표방하며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협력, 자유무역협정(FTA)의 확대판인 동아시아 경제연대 협정(EPA) 구상을 주창함으로써 재계의 우려에 배려할 태세다.
그러나 그의 아시아 정책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중국 위협론의 기조가 여전히 강한 가운데, 미-일 동맹을 축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인도 등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연계를 장기전략 구상으로 제창하고 있다. 의도적인지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민주주의 국가 한국은 이 구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아직 그 구체적인 내용은 명확하지 않지만, 중국을 겨냥한 성격이 두드러질 경우 동아시아에는 ‘신냉전’의 찬바람이 불어닥치게 된다. 야스쿠니 참배 문제가 일단락된다 하더라도 한-일 관계는 더 큰 불안정 요인들을 헤쳐 나가야 한다. 일본의 다양성과 변화를 시야에 넣은 포괄적으로 능동적인 대일정책의 구상이 필요하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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