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27 18:16
수정 : 2006.08.2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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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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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북예멘은 자본주의, 남예멘은 사회주의 체제였으며, 북예멘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보수적인 사회라는 것. 이 두 국가는 내전 끝에 1990년 북예멘의 주도로 통일이 되었다는 것. 자, 이같이 중차대한 세계사 지식을 평소 상식으로 알고 계셨던 분은 손들어 보시라.
아마 드물 것이다. 나도 방금 이른바 ‘인터넷 지식검색’이라는 것을 해서 알아낸 사실이다. 어쩌면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금방 까먹을지 모른다. 자본주의 진영이 남쪽이랬나, 북쪽이랬나 하고. 그런데 예멘인지 뭔지 그런 건 알아서 무얼 하지?
문제는 ‘그런 건 알아서 무얼 하지’의 대상이 평범한 외국인에게는 사우스코리아와 노스코리아의 상황에도 해당될 수 있다는 점이다. 동북아 ‘한-중-일’ 삼국 간의 역학구도 어쩌구 하는 토론들도 우리끼리나 하는 말일 뿐, 저 바깥세상의 쟁론에는 오직 ‘중-일’이라는 구도만이 있어 보인다. 한국은 변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나라가 작고 가난해서 그렇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웬걸. 무역성적이 세계 십몇 등이요, 유엔 분담금액을 보면 좀 놀랍기까지 하다. 이제는 우리도 할 만큼 하고 있는데 인정과 관심을, 사랑과 존중을 못 받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김정일 뉴스’의 부록으로나 해외 전파를 타야 한다는 말인가.
최근에 무슨 부탁할 일이 있어 그 바쁜 한비야씨를 두어 차례 만났다. 건강이 좋지 않다지만 흔히 ‘무당 끼’라고 주위에서 놀려대는 특유의 활기발랄은 여전했다. 뜻밖의 말을 들었다. 앞으로 유엔 난민기구나 국제적십자사 같은 국제기구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그런데 먼저 분연히(!) 전제해 둘 말이 있다. 가령 한비야가 돈을 달라고 하면 무조건 주머니를 털어 다 주어야 하는 거다. 시간을 내라고 하면 역시 열 일 다 제쳐야 하는 거다. 그에게 상납하는 돈은 필시 빈곤국가 난민 어린이의 식량이 될 것이고, 바쳐야 하는 시간은 내 사생활보다는 훨씬 의미 있는 일에 쓰일 테니까.
국제기구에 대한 한비야의 관심은 그러니까 통속한 입신출세와는 다른 맥락의 말이다. 그의 본뜻은 현장 경험자가 힘 있는 유력 국제기구에 좀더 많이 개입해야겠다는 판단이었다. 재난 지역에 몰려드는 전세계 엔지오와 자원봉사자 수는 엄청난데 그걸 통괄하는 국제기구, 가령 유엔에서 파견한 대략 30대 나이쯤 되는 책임자의 상황파악과 실무처리 능력은 좀 난처할 정도라는 것이다.
귀가 솔깃했던 말은 지나가듯이 흘린 이야기. “지금은 한국 사람에게 열려 있는 자리도 참 많은 것 같은데 대부분 못 찾아먹고 있어요.” 왜 아니겠는가. 국제기구에서 책임 있는 구실을 맡고 있는 철수와 영이의 모습이 잘 떠오르질 않는다. 엄두가 나질 않는, 우리와는 먼 별세계의 일처럼 국제기구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쌤썽’과 ‘현다이’의 현란한 장사도 대견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걸로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 세계보건기구를 이끈 고 이종욱 박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망이 이들 기업의 매출규모보다 우위에 있다고 하면 과장일까. 물론 무슨 총장이다 의장이다 하는 자리 차지보다야 묵묵한 봉사와 헌신의 자세가 선행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가능한 몫에 대한 관심까지 지울 수는 없다.
그러고 보니 멀리 갈 것도 없다. 분쟁지역 하면 이란계 미국인 여기자 아만포가 떠오르듯이, 재난의 현장이라면 세계인이 우선 한비야를 찾는 때가 온다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아무렴, 그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않은가. 나아가라, 한비야! 쭈욱.
김갑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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