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29 19:47
수정 : 2006.09.01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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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립 경성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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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미국의 군사 전문가 로버트 캐플런이 <애틀랜틱 먼슬리> 최근호에 쓴 기사 ‘라스베이거스의 탈레반 사냥’의 내용이다. 카지노 호텔이 즐비한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내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넬리스 공군기지가 있다. 영내에는 위장막을 친 군용 트레일러들이 있는데, 트레일러마다 2인 1조로 편성된 미국 공군의 A-10과 F-15 조종사들이 헬파이어 공대지 미사일을 실은 무인 정찰기 MQ-1B, 일명 ‘약탈자’(프레디터)를 24시간 조종한다. 유럽에 설치한 군용 안테나와 대서양의 해저 케이블을 통해 전송된 이 무인 정찰기의 실시간 영상을 컴퓨터 화면으로 보면서 한 트레일러에서는 이라크 전쟁을, 그 옆의 트레일러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소탕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그래서 트레일러 바깥은 미국 본토, 곧 북부사령부 관할 지역이지만, 트레일러 안은 중동 지역을 관장하는 중부사령부 작전 지역이다. 언젠가 태평양사령부가 관할하는 한반도용 트레일러도 그 옆에 생길지 모른다.
미국이 주도하는 21세기의 군사기술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특히 무인 항공기를 이용한 원격 전쟁 기술의 발달은 군사작전의 개념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 이미 미국은 낙타와 인공위성을 결합시킨 정보 기동전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선보였지만, 지상 전투를 대체할 무인 공격 기술이 발달할수록 전통적인 작전 개념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종전의 기지 중심에서 소규모 기동군 중심 편제로 온세계의 미군을 재배치하는 미국의 계획(GPR)도 군사기술 혁신에 따른 새로운 작전 개념에 기대어 추진되고 있다. 생각이 기술을 바꾸는 게 아니라 기술이 생각을 바꾼다. 비 군사 전문가의 순진한 예측일 수도 있겠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작전을 지휘하는 원격전이 보편화하면 ‘누가 지휘하는가’를 결정하는 작전통제권(작통권)보다 ‘어떻게 지휘하는가’를 결정할 군사 기술력이 중요해진다. 작전 통제의 의미가 병력 통제에서 기술 통제로 이동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을 앞세운 안보론과 명분을 앞세운 자주론이 맞붙은 근래의 전시 작통권 환수 논쟁은 철저히 ‘근대전의 추억’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작통권 이양 이후에도 주한미군 주둔과 유사시 지원 전력을 보장한다는 미국 대통령의 말에 이어 미국 국방장관도 2009년까지 작통권을 반환하겠다고 나선 배경에는 정치·경제적 고려도 있겠지만 작전 개념의 탈근대적 변환에 대한 비전도 있을 것이다. 이미 주한미군도 작전 범위나 작전 능력 면에서 한국군보다 월등한 해군과 공군 위주로 재편되고 있으며, 한-미 연합사를 대체하게 될 공동방위 체제도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운용될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군사 기술력의 불가피한 차이 때문에 유사시 양국의 작전 범위가 기술적으로 구별될 개연성도 있다. 전시 작통권을 단순히 지휘권 소재 문제로만 볼 수 없는 구체적인 정황이다.
한국 국방부 장관이 북한의 핵 보유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뉴스를 그냥 넘길 만큼 온 나라가 21세기형 상품권 도박 추문의 볼모로 붙잡힌 상황이지만, 작통권 문제를 이해하는 생각의 틀은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 있다. 작통권 환수 논쟁이 예법을 둘러싼 조선시대의 당쟁과 다른 생산적 논쟁이 되려면, ‘자주’나 ‘안보’의 의미까지 변화시킬 구체적 기술 문제까지 포괄하는 논쟁이 되어야 한다. 작통권 논쟁이 각각 명분과 현실만 내세운 정치적 대결로 끝나서는 안 될 이유는 이것이다.
권용립 경성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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