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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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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근로장려세제’가 도입된다고 한다. 이것은 가구 근로소득의 합이 일정 수준에 미달하는 저소득 가구에 정부가 일정 금액의 현금을 보조해 주는 제도로서, 저소득층의 근로를 유도해서 빈곤을 탈출하도록 지원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지금까지 이 제도에 대한 비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누가 저소득층인지를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소득 파악이 되겠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재원이 마련되겠느냐 하는 것이다.사실 이 두 가지는 복지제도를 확충하고자 할 때 늘 제기됐던 문제이고, 정책 입안자들도 충분히 고민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지원 단위를 가구로 할 것인지 개인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선 고민한 흔적이 없다.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이 적더라도 일단 취업을 하면 정부가 추가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이 제도로 말미암아 일자리를 찾아 나서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 부부가 둘 다 취업하지 않고 있는 가족이라면 적어도 한 명이 일을 찾아 나서겠지만, 이미 남편이 취업을 하고 있는 경우라면 아내를 노동시장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까? 근로 빈곤층에 대한 소득지원 정책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근로를 유인하는 효과는 거의 없는 게 아닐까? 대한민국 남성 가장들이 근로의욕이 부족해서 문제가 되는 형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원액수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이 제도의 혜택을 보려고 일을 하지 않는 기혼여성은 없을 것이라는 말로는 변명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제도는 애초에 근로를 유인할 힘이 전혀 없는 제도라는 것과 같다.
가족을 지원 단위로 삼는 이유는 한 가족의 구성원들은 소비와 복지 수준을 공유하는 것으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가정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고방식으로는 절대로 지킬 수 없는 것이 여성의 경제적 독립성과 노동권이다. 가족을 지원 단위로 삼는 대부분의 정책들은, 남성 가장은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고 여성 배우자는 가족구성원을 돌보는 가족을 표준적인 가족 유형으로 설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런 모델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라느니, 혼인하여 일군 재산은 부부 공동의 소유라느니 하는 외침들은 공허하다. ‘가사 파업’으로 가계에 타격을 입혀서 보여줄 수도 없고, 어떻게 기여했는지는 따지지 않고 무조건 절반은 여성의 몫이라고 우겨봐야 그리 설득력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우리 사회는 남성 가장을 지원하는 것은 곧 그가 이끄는 가족 전체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공공주택 분양에서 우선순위를 주거나 절세할 수 있는 금융상품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요건으로 무주택 혹은 소득 얼마 이하의 ‘세대주’일 것이 요구됨으로써 대부분의 기혼여성은 자신 명의의 재산을 가질 기회가 봉쇄되는데도 이런 자격요건이 부당하다고 문제제기 하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하였다.
다시 근로장려세제로 돌아가 보자. 저소득층 가정에서 취업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대체로 누구이며 이들은 왜 일을 못하고 있는가? 이들은 대부분 여성이고, 취업을 해도 집안에 아픈 사람이나 노인, 어린 자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데 드는 비용을 제하고도 남을 만큼 돈을 벌 수는 없기 때문에 일을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빈곤 탈출을 지원할 제도의 설계는 일을 하는데도 소득이 낮은 사람을 개인 단위로 각각 지원하든가, 아니면 부부 중 한 명이 버는 경우와 두 명이 모두 버는 경우 지원 대상이 되는 소득수준의 기준을 달리 설정할 수 있다. 물론 저소득층의 아동 보육과 환자 수발을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의 뒷받침은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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