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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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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2004년 4월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버른 가정법원은 13살 난 여자 아이에게 성전환을 허가하였다. 먼저 월경억제 등 호르몬 요법으로 다스리고, 16살이 되면 근육이나 목소리 등을 영구히 변화시키며, 18살이 되면 외성기 수술을 하는 등 단계적으로 남자가 될 수 있도록 판결한 것이다. 물론 이 아이는 염색체나 호르몬 등 신체적으로 여느 여자 아이와 다르지 않다. 단지, 어렸을 때부터 남자로 커왔고, 판결 당시도 남자크리켓팀 선수로 활약하는 등 남자로 생활해 왔다. 이에 주정부는 이 아이를 위해 법원에 성전환 허가신청을 하였고, 법원은 판결문에서 이 아이를 ‘그’(he)라고 호칭하면서 미성년자의 성전환을 허가하는 최초의 선례를 만들었다.2006년 6월 한국의 대법원은 “성전환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 ‘성전환증 환자’에 대하여 성별 정정을 허가하였다. 그리고 석 달 뒤 대법원은 20살 이상으로 미혼에 무자녀일 것, 외성기가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을 것, 병역을 필하였을 것 등 7개 항에 이르는 성별 정정 허가기준을 내놨다.
하지만 이 두 사례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겉으로는 양쪽 모두 자신이 원하는 성으로 살아갈 권리를 인권적 차원에서 보장하는 듯이 보인다. 문제는 그것의 실현에 대한 인식이 너무도 다르다는 데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육신에 차폐된’ 자기의 성정체성을 인권과 복지 차원에서 복원해 내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아이의 고통을 주정부가 달래고 법원이 덜어내며 지역사회가 수용하고 배려하는 절차를 밟아나간다. 반면, 우리 대법원은 정반대 방향을 선택한다. ‘달고 나오지’라는 외성기에 편향된 사회적 인식을 그대로 법적 기준으로 삼아 정상/비정상을 구분하고, 이 과정에서 성정체성에 관한 인권문제를 논점에서 제거해 버린다. 그것은 병리적 증상으로 의료처치의 대상이며, 성별 전환은 법적 안정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에 기혼자나 자녀를 가진 자의 성별 전환은 배우자나 자녀의 권리에 대한 침해로 전제되며, 장정의 성전환은 병역기피 혐의를 받게 된다. 심각한 성정체성의 고민에 빠진 사춘기의 청소년들은 미성년자라는 낙인 하나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법불구자가 되어버린다.
한마디로 우리 대법원은 성전환이 사회적 일탈 내지는 잠재적인 질서위협 요인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신청인은 ‘범죄 또는 탈법행위에 이용할 의도나 목적’이 없음을 검증받아야 하며, ‘신분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음을 사회로부터 승인받아야만 원하는 성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주류사회의 의심을 해소하지 못하는 자는 그 성정체성이 무엇이든 그의 생활이 어떠하건 혹은 어떤 인권이 어떻게 훼손이 되건 관계없이 법의 보호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물론 법적 안정과 사회질서의 유지라는 관점도 성별 전환의 판단에 중요한 고려사항이 된다. 그러나 성전환자 특례법의 입법이 거론되고 있음에도 훨씬 가중된 요건을 내세워 성별 전환을 통제하고자 하는 우리 대법원의 편향된 시각은 오히려 그 사회질서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요컨대 이 ‘주민증 까는 사회’가 성전환자들에게 강요했던 고통과 억압을 직시한다면, 예외적·잠재적 위험을 강조하기보다 그들이 당면한 인권침해의 현실을 치유하려는 노력이 앞서야 한다. 그리고 이런 헌법적 당위에 입각한 인식전환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올바른 성별 전환 기준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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