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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19 18:36 수정 : 2006.09.19 18:36

권용립 경성대 교수·국제정치

세상읽기

한국에서 한-미 정상회담은 언제나 1면 머릿기사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국제면 한 쪽에 나오는 평범한 기사일 뿐이다. 국력 차이를 감안한다 해도 상대를 보는 양국의 시선은 지나칠 정도로 비대칭이다. 그러나 이 비대칭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한-미 관계의 끈질긴 속성이다. 지난주의 한-미 정상회담을 보는 양국 정부의 시선에도 비대칭성은 드러난다. 북한이 미국과 일본의 금융제재에 대해 핵실험 강행설로 맞선 가운데 열린 정상회담이지만 북핵 해법에서는 양국간 합의가 어렵다는 점에 미리 합의하고 시작한 듯한 회담이었다. 그러나 공동선언이나 공동발표문도 없고 정책 공조를 위한 협의도 별로 없었던 이번 회담에 대한 한국 정부와 여당의 평가는 미국과 상당히 다르다.

미국은 일부 신문이 비우호적으로 예언한 ‘우호적 이혼’ 절차만은 되지 않도록 이번 회담을 위한 최소한의 외교적 모양새만 갖추었고, 미국 정부나 언론은 이번 회담을 북한 문제를 둘러싼 양국 사이 이견을 외교적 덕담으로 포장해서 무마한 의례적 절차로 무심히 보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와 여당은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과 유사시 지원에 대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구두 약속, 특히 전시 작전통제권(작통권) 환수 문제가 ‘정치화’해서는 안 된다는 미국 대통령의 친절한(?) 내정 훈수까지 회담의 성과로 부각하면서, 오히려 그것을 작통권 환수 문제에 대한 국내의 정치적 분란을 잠재울 묘약으로 반긴다. 북한의 핵실험이 임박한 시점에 대면한 양국 정상이 한반도 위기를 해소할 논의를 하지 못했음을 걱정하기보다는 작통권 환수 분란을 잠재울 보증수표를 2년 후면 임기가 끝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다고 자축하는 형국이다. 친미든 반미든, 한국 정치의 틀로만 집요하게 미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한국을 외교의 상대로만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과 비대칭을 이루는 현실이 단순히 국력 차이 때문만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은 외교적 덕담으로 시종한 정상 사이 회동이 아니다. 워싱턴 대북 강경파의 좌장인 딕 체니 부통령이 지난해 6월의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이번에도 배석하지 않고 오찬에만 참석함으로써 한국 정부에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회담의 급소라면 급소다. 이로써 ‘체니의 불참’은 한-미 관계의 지표가 되었다. 체니의 빈자리가 한-미 사이 엇박자를 표상하는 한, 한국 대통령이 직접 대북 금융제재의 야전 지휘관인 미국 재무장관을 만나봐야 소용없다.

체니의 불참은 대북 제재를 완화할 가능성이 ‘제로’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체제 존립을 위협한다는 점에서는 군사공격과 다름없는 경제 제재에 대해 북한이 핵실험 강행으로 맞설 가능성은 더 커졌다. 중국의 만류가 변수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한국 정부의 대북 포용책은 핵무장을 통해 생존 전략을 선택한 북한의 선군 외교에 제동을 걸기에 이미 역부족이다. 특히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 강행이 그동안 북한이 주장해 온 ‘자위’의 정당성을 결정적으로 훼손할 자충수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끝까지 가게 되면 비록 상처는 입지만 강자가 이긴다. 과연 북한이 미국에 핵실험으로 맞설 경우 ‘평화와 대북 포용’의 대전제인 한반도 비핵화까지 포기해야 할 한국의 전략으로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 한반도 비핵화 논의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랄 중대 고비의 한-미 정상회담을 한국의 정치문제인 작통권 환수에 결부시키는 안목으로는 미국은커녕 북한도 대등하게 상대할 수 없다. 그래서 진짜 정상회담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다.

권용립 경성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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