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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21 21:48 수정 : 2006.09.21 21:48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세상읽기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발언으로 이슬람권이 들끓고 있다. 알려진 바로는 교황은 강연에서 14세기 말 동로마(비잔티움) 제국의 마누엘 2세 팔레올로고스 황제의 발언 가운데 이슬람교가 “사악하고 잔인한 것만을 가져왔다”고 해석한 듯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지하드’를 비판했다.

교황의 발언은 사려깊지 못했다. 우선, 역사와 고전을 인용하는 방식부터 보자. 기독교 동방정교회의 중심인 동로마제국이 ‘악의 세력’이라는 오스만 튀르크인들의 공격을 받고 힘들어 할 때 서방 가톨릭 사회는 동로마제국을 별로 돕지 않았다. 마누엘 2세도 서방에 오래 체류하며 원조를 호소했지만, 산발적 지원밖에 받지 못했으며, 그 후 동로마제국은 고립무원 상황에서 멸망했다.

그것은 약과이다. 잘 알려졌듯, 그 전 1204년에 동로마제국 수도를 정복하고 이곳에 자기네 왕국을 건설한 것은 바로 교황의 선창으로 조직된 십자군 원정대였다. 쫓겨난 동로마제국 사람들은 망명국을 세웠다가 몇 십 년 뒤 제국을 회복했지만, 이로 말미암아 국력이 약화되었음은 물론이다. 당시 제국 최대의 적은 서방 교회와 그 비호를 받는 세력이었다. 그들의 잔인함이 얼마나 심했으면 동로마제국의 역사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고 온 이 사나이들”보다는 차라리 이슬람교도들이 더 “인간적이고 온화했다”고 썼을까.

이렇듯 과거 역사에서 이슬람권, 서방 기독교권, 동방 기독교인들이 서로 전쟁하고 미워했다는 것은 한 쪽이 절대선이고 다른 쪽이 절대악인 상황이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사방에서 공격받고 있던 동로마제국 사람들의 입에서는 이슬람 비판 발언도 물론 나왔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더 심한 가톨릭 비난 발언이 나오기도 했던 것이다. 이를 무시하고 한 구절만을 따서 특정 세력을 악의 존재로 규정했으니, 교황의 발언은 역사적 맥락에도 어긋난 것이고, 강자로서의 자기 성찰적 자세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교황의 발언은 광범한 정체성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 전부를 한묶음으로 모욕한다는 느낌을 준다. 일부 한국인에게서 좋지 않은 경험을 했다는 이유로 한국인 전체를 비판한다면 한국인들이 들끓게 될 것과 마찬가지다. 갈등을 빚는 집단들 사이에서 역사를 인용하며 개입할 때, 그것이 갈등을 증폭시키고 자기 정당성만을 주장하려는 것인지, 상호이해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려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교황이 현재와의 관련성 속에서 6세기 전의 역사를 끌어들일 때는 ‘과거에 우리가 이렇게 잘못했습니다. 사과합니다’라고 말하거나, ‘과거에는 그대들과 우리가 이렇게 친하게 지냈습니다. 앞으로도 잘 지냅시다’라고 말하기 위해서여야 하지 않았을까.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수사학이 발달하여, 올바른 수사를 구사하는 것은 공인의 가장 중요한 능력의 하나였다. 정치인들이 ‘조폭’ 수준의 발언으로 지탄을 받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는 그저 일상사가 되어버려 모든 사람이 체념의 달인처럼 살고 있지만, 세속 정치인도 아니고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해 달라는 세계인의 기대를 한몸에 모으고 있는 최고 종교지도자가 속인들의 속된 견해를 능가하는 발언을 했으니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영향력이 큰 자리에 있는 사람의 한마디와 역사를 보는 그의 안목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게 된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처음에는 보수적인 정치학자의 엉성한 현실분석처럼 들렸는데 마치 그 책의 명제 자체가 자기 예언력을 가지고 현실을 종교 충돌이란 방향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이 야만의 시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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