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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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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네 이럴 줄 나 몰랐다’ 하면서 허탈한 심경을 노래하기엔 내 나이도 부끄럽고 노동연구 전문가라는 직업은 더욱 부끄럽다. 케이티엑스 여승무원 사건에 대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이라는 판정을 내리는 것을 보고 내심 안도하고 있었고, 노동부도 불법파견이라는 결정을 내려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으니 세상에 난 뭘 몰라도 한참 모르고 살았나 보다.물론 차별 여부와 불법파견 여부는 논리적으로 독립적인 결정일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의 판결이 더욱 의미 있었던 것은 한국철도공사의 피진정인 지위를 인정하여 차별 시정의 책임을 지운 데 있었다. 형식적인 사용자가 한국철도유통이라고 하더라도 승무원의 채용과 고용조건을 결정하는 실질적인 주체가 철도공사임을 인정했던 것이다.
불법적인 측면이 일부 있으나 합법적인 측면도 상당히 있어서 종합적으로는 합법으로 본다는 노동부의 발표를 보면서 ‘나는 잘 있으니 아무 염려 말라’는 편지 속에서 행간을 읽어주기 바라는 인질의 모습이 보여서 오히려 연민이 느껴지는 것은 팔이 안으로 굽어서일까. 조사를 철저히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모든 정황과 증거들은 철도유통이 인사노무관리나 경영상 공사에 독립적인 회사가 아님을 말해주고 노동부의 조사결과도 이런 점들을 적시하고 있다.
노동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장도급은 아니라고 판정한 근거로 제시한 점들은 도급계약이 적법함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열심히 ‘위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공사의 열차운용 계획표에 따르기는 했지만 승무원 배치는 유통이 했다, 공사의 시정요구서에 따르기는 했지만 징계조치는 유통이 했다, 공사로부터 받은 인센티브를 유통이 지급했다. 이 정도 위장 노력도 안하고 자회사 만들었겠는가? 열차팀장과 승무원의 주된 업무는 구분 가능하기 때문에 승무원의 업무는 외주화할 수 있다? 팀장과 팀원의 업무가 똑같으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일 테고,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팀장과 팀원이 각각 다른 회사 소속이라는 점이다.
이번 노동부의 판정은 여러 가지로 우리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지만, 그중에서도 두 가지는 정말 중요하다. 첫째는 공공부문에서 공공성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열차팀장과 승무원의 관계를 더 이상 팀장과 팀원의 관계가 아니도록 만들기 위해서 철도공사는 최근 위탁 자회사를 바꾸면서 승무업무와 승객안전업무를 없애버리고 물품 판매하는 사람만 객차를 돌아다니게 만들었다. 이제 승무원은 없다. 물론 팀장도 이름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팀원은 하나도 없고 400미터 케이티엑스 열차에서 모든 일을 혼자서 하게 되었으니 팀장이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
문제는 승무원의 존재와 함께 승객의 안전도 사라지게 되었다는 데 있다. 이런 식으로 모든 공공부문에서 공공성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핵심업무는 외주화할 수 없다고 하면서 공기업 경영평가는 인건비 절감을 요구하니 어리석게도 핵심업무 자체를 없애버리는 아이러니다. 이보다 실은 더 중요할 수 있는 이번 사건의 두 번째 의미는 이후 다른 기업들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여 케이티엑스 사건 자체에 대해서 공정한 판정을 하지 못하고 힘없는 소수의 여성노동자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작게는 인건비 절감, 크게 봐주어도 경제적 이익 앞에 정의는 하찮은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노동부의 발표가 있기 하루 전날, 대통령이 텔레비전 대담에 나와서 비정규직의 숫자를 단 한명도 줄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가슴아파하였다. 그게 진심이라고 믿었었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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