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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08 22:00 수정 : 2006.10.08 22:00

김갑수 문화평론가

세상읽기

봉수 형님, 추석은 잘 쇠셨습니까? 지난 ‘고난의 행군’ 시절보다는 살림살이가 많이 폈다고 하니 ‘이밥에 고깃국’이라도 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끔 꺼내보는 사진 속의 형님 모습은 우리가 피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달라보였습니다. 저는 좀 둥근 편인데 형님은 바싹 마른, 기름한 얼굴이었지요. 형님 가족의 옷차림이며 사진 뒤편으로 보이는 집안 풍경에 대해서는 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평안도 인근의 평범한 농부 일가는 아마 그렇게 사는 모양이지요? 예전 이쪽 땅에 지학순 주교라는 유명한 분이 계셨는데, 남한의 반독재 운동에 앞장서던 그분이 북한을 다녀오자마자 갑자기 보수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일이 있었습니다. 처음 형님 가족의 사진들, 그리고 ‘장군님의 은덕으로 호강한다 …, 풀베기 전투에 앞장선다 …’는 내용의 편지를 접하면서 저는 그 노구의 주교님을 떠올렸습니다. 그때 이후 북녘 사정에 관한 한 저는 안보당국의 발표를 믿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영문을 모르실 분들을 위해 먼저 형님과의 인연을 말씀 드려야겠군요. 헬 수 없는 실향민이 비슷한 사연을 지니고 있듯이, 제 아버지도 이북에서 결혼하여 남매를 낳은 기혼자였습니다. 월남하여 그 모든 것을 감추고 처녀장가를 들어 낳은 것이 저와 누이들입니다. 김영삼 정권 이래 ‘용인되는 불법’으로 편지왕래가 가능해졌지요. 무척 부유한 분들은 몇 만 달러를 내고 압록강 경계에서, 심지어는 베이징에서 직접 상면까지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저희는 편지로 많지 않은 돈과 옷가지를 부치는 형편이었습니다. 보낸 달러를 손바닥에 쫙 펼쳐 증거사진이라고 보내온 것을 보노라면 비감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몸으로 겪는 분단의 현장이니까요.

알고 계시는지요. 형님 가족이 말하는 ‘장군님’께서 급기야 핵실험을 한다고 합니다. 왜 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압니다. 미제의 침탈에 대비하는 이른바 자위적 수단. 핵확산 금지에 관한 국제규정 운운은 아마 그쪽에서 보기에 가당치도 않다고 여기겠지요. 파키스탄을 보라, 이란을 보라, 아니 미국 너희들의 핵무기는 뭐냐! 제가 그에 대해 반론을 꼭 해야 하겠습니까.

며칠 전 친구와 심한 언쟁을 했습니다. 미군의 북한 폭격 가능성에 대한 견해 차이였습니다. 친구는 두 가지 논거로 폭격은 절대 없다고 장담했습니다. 첫째 이라크전을 통해 미국이 얻은 것이 없다. 미국 내 반전여론을 무릅쓰고 부시 정권이 무리를 할 리가 없다. 두 번째 중국이 절대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 북한 관계는 형제애 이상이므로 중화의 자존심을 걸고 막아줄 것이다.

친구의 장담대로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지만 수많은 전쟁이 예측을 벗어나 발발합니다. 아흔아홉 번 모면한 일도 단 한번 일어나면 죽음인 게 전쟁입니다. 도대체 왜, 누구를 위한, 무엇을 얻을 수 있는 핵도발이라는 말입니까.

비겁하지만 솔직한 말을 하겠습니다. 핵사태로 염려하는 것은 형님 가족에 앞서 우리 자신입니다. 대구지하철의 사망자 200여명이, 아니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광주 내전에서 사망한 몇 백명의 유령이 아직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단 하루의 북폭만으로도 서울을 겨냥한 북한 방사정포가 몇 만, 몇 십만을 희생시킬지 알 수 없습니다.

혹시 봉수 형님네는 장군님을 위해 장렬하게 목숨을 걸 각오를 하고 계십니까. 저는, 우리 이남 사람은 전혀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건 의미 없는 개죽음일 따름입니다. 만에 하나, 혹시 모를 재앙 앞에서 지금 우리는 너무나 무력합니다. 형님도 그렇지요?

김갑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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