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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12 20:44 수정 : 2006.10.12 20:44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세상읽기

북한 핵실험으로 온 지구촌이 술렁인다. 유엔 쪽에서는 전면적 제재를 말한다. 이 실험은 예고된 것이었기에, 사후 제재는 성마른 아이를 위험한 놀이로 내몰고서 모진 매를 들이대는 것과 같다. 현재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전면 해상봉쇄와 관련하여 북한은 이를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북한이 다시금 “내가 예고했잖아!” 수준의 실행 의사를 보이고 파국적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때는 예고를 무시한 쪽의 나태함에도 큰 책임이 돌아갈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남북 대화 정책의 전면적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사실, 이번 북한의 선택은 아주 화나는 일이다. 한반도 비핵화 약속의 위반인데다 미-일 동맹만 강화시키는 일이기에 더 그렇다. 북한은 그간 경제제재를 이유로 6자 회담에 들어오지 않았고 남북 정상회담에도 별 의지가 없었으며, 미국과의 직접 대화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북한 정권 못지않게 완강한 미국 정부가 이를 거부하면서 상황은 악화했고, 남에서는 북을 애써 지원한 결과가 이 모양이냐, 허탈한 마음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허탈해도 남북대화 중단과 전면봉쇄가 해법일 수는 없다. 핵실험 사태에 시민들은 놀라고 화도 냈지만, 군사 행동이 벌어질까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북한 정부의 결정은 비판했지만, 그와 함께 전면 제재에 들어갔을 때 북쪽 주민들이 받을 고통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북쪽도 핵실험을 전후하여 남쪽을 비난하지는 않았다. 남북이 그동안 상호 적대감을 어느 정도는 해소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남북 대화가 북한 핵실험을 초래한 게 아니라, 남북 대화가 있었기에 핵실험을 했는데도 남북이 이나마 안정을 유지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남북 협력을 중단하고 과거와 같은 극한 대립, 상호 증오로 돌아가서 얻을 게 무엇일까? 사소한 충돌이라도 쌓이면 극단적 대결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일부에서 주장하는 대로 ‘북한 정권이 붕괴하면’ 1989년 루마니아 사태 같은 혼란만 초래될 것이다. 북한의 역사 경험은 동독이나 체코, 폴란드, 헝가리보다는 루마니아에 더 가까이 있다.

경제제재가 통할 사회가 있고 그렇지 않은 사회가 있다. 북한은 제재가 통하지 않는 사회이다. 반면, 예컨대 미국이 북한 유학생을 매년 이삼백명만 받아들여 장학금 주어 공부하게 해 보라. 북한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도 그 숱한 협상기회를 놓치고 결국 북한을 또 하나의 핵실험(주장)국으로 만든 것은 현재 사실상 세계정부 노릇을 하는 미국이 대북 정책에서 서툴렀음을 말해줄 뿐이다. 지금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것이냐가 문제가 아니다. 리비아식 해법이라도 적용하려면 북한의 요구를 들어본 후 핵무기 폐기를 놓고 협상해야 한다. 북한의 변화는 변화할 여유를 준 후에 논할 일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미 직접대화에 응할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6자 회담이라도 가동시키려면 제재를 완화하고 외교를 회복해야 한다. 인질을 잡고 있는 인질범한테도 위협이 아니라 설득을 하지 않는가.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평화를 지킬 것이며 한반도 일대에서 군사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명백한 의지의 천명이다. 그러자면 오히려 보수 세력이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지난일들로 말미암은 악감정에 매달리지 말고 미래를 풀어가야 한다. 핑퐁외교를 통해 중국과의 수교에 성공했던 것은 미국의 민주당 정부가 아니라 강경 보수주의자였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 정부였다. 외교로 이번 사태를 잘 풀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예술이라 하겠다.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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