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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17 19:28 수정 : 2006.10.17 19:28

박구용/전남대 교수·철학

세상읽기

1991년 봄 노태우 정권의 폭압정치가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외세에 주체성을 헌납하고 얻은 권력으로 국민을 지배해온 독재의 역사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끝없이 은폐되어 왔던 권력의 모순을 폭로하고 삶의 희망을 찾기 위해 몇몇 젊은이들이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아니다. 젊은이들이 스스로 화염 속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독재자의 폭력과 그것에 침묵한 우리들의 무관심이 그들을 화염 속으로 밀어 넣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는 스페인 내전에서 우익 반군과 동맹을 맺은 독일군은 무차별적인 공중폭격을 통해 바스크지방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를 초토화한다. 피카소는 <게르니카>라는 벽화를 통해 소리 없이 사라져간 사람들의 절규를 알린다. <게르니카>를 보고 “당신이 그린 것이냐”고 물었다는 독일 장교에게 피카소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아니, 바로 당신이 그린 것이오.”

95년 겨울, 작곡자 윤이상은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독일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났다. <화염에 싸인 천사>는 20세기의 위대한 작곡가였던 그가 남긴 마지막 곡이다. 그는 91년 분신으로 죽어간 젊은이들에 대한 책임감 있는 기억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이 곡을 작곡했다고 설명했다. <화염에 싸인 천사>는 젊은이들을 희생양 삼은 매판 권력의 반도덕성을 폭로하고 있다.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일까? 많은 예술 이론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현대와 같은 다원주의 시대에 참된 예술과 거짓 예술을 구별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순수예술과 참여예술 사이의 대립 역시 진부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과 사이비 예술은 구별되어야 한다. 진정한 예술이 권력에 의해 은폐된 모순을 폭로하고, 왜곡된 이데올로기에 의해 격화된 대립을 화해로 이끈다면, 사이비 예술은 모순을 은폐하고, 격화된 대립 앞에서 침묵한다.

윤이상은 진정한 예술가였다. 그의 예술은 한편으로 화해될 수 없는 불행한 의식, 배제되고 감금된 언어, 배반당한 약속, 가려진 어둠, 언어를 빼앗긴 존재들의 함성을 표현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동서 문화와 남북의 이념이 서로를 적대시하던 경계에 서서 서로의 만남과 화해를 주선했다. 이러한 진정성 때문에 윤이상의 음악은 환영받지 못했던 고국으로 반복해서 다시 돌아오고 있다. 남쪽 고향 통영에서 북쪽으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두 세계의 장벽을 무너뜨리며 그의 음악은 울려 퍼지고 있다.

더구나 올해에는 남북 음악인이 함께 ‘윤이상 평화음악축전’의 이름으로 북한에서 그의 음악을 연주하려고 했다. 정명훈은 북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윤이상의 첼로 협주곡을 지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북한 핵실험 때문에 갈등이 첨예해진 시기에 연주회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불참 의사를 밝혔다. 정명훈의 결정은 예술가로서 세계적 인정을 받는다는 그의 명성을 의심케 한다.

그가 진정한 예술가라면 지금처럼 대립이 극화된 시기에 음악을 연주해야만 하지 않는가? 이처럼 간절하게 예술이 요구되는 때도 없었다. 예술만이 비록 짧은 순간이라도 대립의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여줄 수 있으며, 북한 핵실험의 배후자가 부시 정권의 근본주의적 배제 외교라는 것을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침묵하는 순간에도 예술가는 한민족 전체를 화염에 휩싸이게 할 수 있는 핵실험이 북한이나 햇볕정책이 아니라 바로 당신들, 미국과 미국에 주체성을 팔아먹은 위정자들이 한 짓이라고 말해야 한다. 또다시 ‘화염에 싸인 천사’를 노래하지 않기 위해.

박구용/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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