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
세상읽기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동북아시아의 ‘핵 도미노’가 현실적 우려로 대두되고 있다. 지금 당장 핵실험과 보유가 잇단 사태는 아니지만 이미 ‘핵무장 논의’가 도미노처럼 번질 기세다.10월 15일 일본 자민당의 나카가와 쇼이치 정조회장이 “일본 헌법은 핵보유를 금지하지 않는다”며 “비핵 3원칙을 수정할 필요가 있는지 논의하자”고 불을 지피자, 18일 아소 외상은 국회 질의에서 “핵보유에 관한 논의를 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동조했다. 이전부터 강경파 정치가들의 핵보유 주장은 없지 않았지만, 외교를 담당하는 주요 각료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그 파장은 적지 않다. 아베 총리는 서둘러 “정부로서 비핵 3원칙을 국시로서 지키겠다”고 강조하면서 진화작업에 나서면서도 ‘언론의 자유’를 이유로 다양한 논의를 억제할 수는 없다는 토를 달았다.
일본이 당장이라도 핵보유국이 될 것처럼 과잉반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한국의 핵무장 논의로 확대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의 핵보유에는 많은 정치적 장애가 있고 쉬운 일이 아니다. 잇단 발언들도 장기적인 포석, 그를 위한 일본내 핵 알레르기의 해소, 북핵 문제를 둘러싼 중국에의 압박 등 다양한 동기가 섞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데이비드 프럼과 같은 미국의 네오콘이 ‘일본 핵무장 용인론’(<뉴욕 타임즈> 10월 10일자)을 들먹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금은 북핵문제의 해결과 그를 위한 6자회담의 재개에 노력과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일본의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정치가들의 ‘무책임한 발언’도 비판되어야 한다.
문제는 일본의 핵무장 논의가 소수의 강경파들의 돌출 발언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일본의 ‘비핵정책’ 자체에 불투명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있다. ‘비핵 3원칙’이라는 큰 틀 아래서도 일본 정부가 정책적으로 핵개발의 잠재력 확보를 추구해 온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같은 불투명성 때문이다. 일본으로서는 유동적인 국제정세에 대처하기 위해 핵개발의 기반적 기술과 능력의 보유가 필요하다는 논리일 수 있으나, 상호불신을 촉진하는 한 요인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은 핵 비보유국으로는 유일하게 플루토늄 처리시설 보유가 인정된 ‘플루토늄 대국’이다. 올해부터 시험가동을 시작한 아오모리현 록카쇼무라의 재처리 시설은 연간 최대 8톤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낮은 수준의 기술로 핵무기 1개를 제조하는데 약 8킬로그램의 플루토늄이 소요되니, 단순 계산으로는 1000개의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양이다. 우라늄 농축시설도 핵비보유국으로서는 독일, 네덜랜드, 브라질등과 함께 일본이 가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미국과의 치열하고 끈질긴 교섭 끝에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으로서도 전략적 관점에서 일본에 대해서는 특별대우를 한 것처럼 보인다.
잠재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의사’의 측면에서도 전략적 애매성이 엿보인다. ‘비핵3원칙’을 견지하고 있지만, 이는 법률이나 조약이 아니라 국회에서 표명된 정부의 방침에 불과하다. 또한 “핵병기가 자위 목적일 경우 헌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유지되고 있다. 핵무기를 원리적으로 배제하지 않으며, 법률적으로는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지만 ‘정책적 판단’으로 핵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 현재 일본정부의 비핵정책의 기본 논리다.
비핵3원칙(1967년)을 표명한 직후인 1969년, 일본 외무성이 작성한 기밀문서 <우리나라의 외교정책대강>은 “당분간 핵무기는 보유하지 않는 정책을 취한다”고 하면서도 “핵무기 제조의 경제적 기술적 잠재력은 항상 유지하며 이에 대한 제약을 받지 않도록 배려한다”고 명시했다.(<아사히> 신문 2005년 8월 2일자)
북핵문제의 단기적 타결과 함께, 중장기적으로는 ‘핵의 평화적 이용’의 불투명성과 불공평성을 지역적 신뢰양성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 한일 양국 모두 진지하게 ‘비핵외교’를 검토해야 할 때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