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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05 22:18 수정 : 2006.11.05 22:18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세상읽기

단풍철 행락객으로 붐비는 주말의 일본 교토에 한국·일본·중국의 역사학자들과 역사교사들, 시민운동 단체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역사인식과 동아시아 평화포럼’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올해로 다섯 번째인 이 대회는 한국과 중국·일본을 오가며 한 해 한 번씩 회의를 개최하였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경험 폭을 확대하고 인식을 심화시키고 있다.

애초 이 대회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반대하는 한·중·일 삼국의 학자, 교사, 시민단체들의 모임으로 출발했으나 이제는 평화를 염원하는 동아시아 민중의 공동의 역사인식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포럼 참가자들은 이미 〈내일을 여는 역사〉라는 동북아 3국 공통의 대안적 역사교재를 출간한 바 있고, 현재는 그간 축적한 경험을 토대로 부교재를 준비 중이다. 올해 대회는 ‘전후 역사와 평화의 선택’이라는 주제 아래 일본 평화헌법 개정 반대운동에서 동아시아 시민의 역할, 야스쿠니 신사 문제, 동아시아의 미래에서 각국의 과거사 정리가 가지는 역할, 북한 핵 문제, 각국 민주화운동과 역사교육이 동아시아 평화에 끼치는 영향 등을 논의하였다. 최근 정세와 관련해서는 북한 핵실험 문제가 참가자들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북한 핵실험은 일본 시민단체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안 그래도 일본인 납치 문제로 일본 사회의 북한에 대한 인식이 악화된 터에 드디어 아소 다로 외상이 핵무장까지 공개적으로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북한 핵실험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이래 점차 강화되어온 일본의 군비 강화와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한층 더 강화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 대회는 북한 핵문제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불안정성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핵문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풀어야 하며,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 동아시아의 시민과 평화 애호 세력이 다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종전 무렵 13살이었다는 한 일본인은 1946년 평화헌법이 제정될 당시 일본의 전쟁 포기를 꿈도 꾸지 못했으나 일본이 이렇게 장기간 평화를 유지한 것은 아시아와 일본 시민들의 평화를 위한 노력과 민주화 운동 덕분이라는 감상을 얘기했다.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 일본 최초의 근대적 역사박물관이라 일컫는 유슈칸이 있다. 1층은 태평양전쟁과 관련한 전시물, 2층은 러일전쟁과 관련한 전시물이 주를 이루고, 태평양전쟁은 자존·자위를 위한 전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애를 쓴다. 유슈칸 쪽은 참관자들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사자들을 참관할 것을 주장한다. 알다시피 야스쿠니 신사에는 에이(A)급 전범들이 합사되어 있고 일본 정부와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의 참배가 동아시아 3국 사이에 외교적 갈등을 일으킨 곳이다. 이 박물관의 전시물은 국화와 벚꽃 이미지의 조합을 제시한다. 천황을 상징하는 국화의 ‘성단’(聖斷)에 호응해서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고 산화해간 벚꽃들을 호국영령으로 미화한 것이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쇼와칸은 1930년대부터 60년대까지 민중 생활사를 다룬 역사박물관인데, 전시물은 일본 민중을 온통 피해자로 묘사하고 있다. 일본의 침략으로 피해를 당한 주변국에 대한 고려는 전혀 볼 수 없다.

역사는 전쟁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과거와 현재, 심지어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지만 역사를 조잡한 이미지의 조합으로, 기억을 왜곡하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 시기 일본 민중이 피해자도 되고 동시에 가해자도 되었던 복잡하고 모순에 찬 현실을 직시하면서 동아시아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역사인식의 확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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