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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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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940년 조선 문학의 긍지였던 춘원 이광수는 가야마 미쓰로우(香山光郞)가 된다. 한때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그는 <무정>, <마의태자>, <단종애사> 등을 통해 소설가로서 조선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그가 왜 반일에서 친일로 전향한 것인지를 묻는다.해방 전 이광수는 자신이 전향한 이유를 주저 없이 설명한다. 오래 전부터 내면적으로 일본인이 되고 싶었지만 외면적으로는 조선 독립을 외친 자신의 삐뚤어진 마음이 일본 천황의 내선일체 정책에 감격하여 바른 길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방 후 그는 자신의 변절이 민족 보존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을 바꾼다. 어느 말이 진실인지는 이광수 자신밖에 모를 일이다. 양심이란 다른 사람이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말이 진실이든 그에게 조선인은 스스로 주체성을 확립할 수 없는 민족이었을 뿐이다. 놀라운 것은 이광수가 다른 어떤 사상가들보다 민족의 주체성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는 우리 민족은 본래 문화적 주체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조선시대의 중국 숭배 사상으로 주체성을 상실했다고 말한다. ‘황민화’가 상실된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선조들이 형성했던 우리의 주체성은 일본의 주체성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
여기서 우리는 이광수의 비굴한 전향이 조선뿐만 아니라 일본의 입장에서도 위선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일본 숭배 사상은 언제나 다른 강자에 대한 숭배로 옮겨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처음부터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자긍심이 없었던 이광수가 한동안 투신했던 독립운동은 명예 없는 권력 의지의 표현이었을 뿐이다.
최근 국가정보원의 ‘일심회’ 관련 수사에 대한 사회적 담론에서 우리는 아직도 한국 사회를 배회하는 이광수의 그림자를 본다. 지난 2일 ‘뉴라이트 전국연합’ 강당에 모인 전향한 과거의 운동권 인사들은 ‘일심회’를 주사파가 주도한 간첩단 사건으로 규정하고 공안 당국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여기서 과거 주사파의 핵심 인물이었다는 강길모는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한 주사파 7명이 열린우리당과 청와대의 요직에 있다고 폭로한다. 이들의 주장이 사실인지는 국가정보원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는 이들 뉴라이트 인사들이 했다는 전향의 진정성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때 친북 반미의 전사로서 학생운동을 주도했다던 그들이 왜 반북 친미의 선동가로 전향한 것일까? 그들은 희망 없는 북한이 아니라 초강대국 미국과 하나 되는 것만이 민족을 보존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광수처럼 강자에 대한 기생적 숭배 사상을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숭배했던 대상을 바꾸었을 뿐이다. 그들에게 어제의 동지가 적이 되었듯이, 오늘의 적은 내일의 동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미국뿐만 아니라 정권 창출을 꿈꾸는 한나라당에도 위험한 세력이다.
무엇보다 뉴라이트로 전향한 주사파들이 위험한 것은 그들이 아직도 적과 동지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타자는 동지 아니면 적일뿐이며, 타자는 언제나 적도 될 수 있고 동지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내면세계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나는 언제나 정의이며, 너는 언제나 불의’라는 생각이다. 나는 홀로 주체이며, 타자인 너는 언제나 대상일 뿐인 것이다. 이처럼 뉴라이트 전향자들은 아직도 지독한 홀로 주체성에 사로잡힌 주사파들이다. 한나라당이 권력을 잡는 날 이들은 숨겨둔 날개를 펴고 비상할 것이다.
박구용 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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