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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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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우리나라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비율은 다른 선진국보다 10%포인트 이상 낮다. 한국에서 가장 개발이 덜된 쪽이 여성인력 분야라는 한 외국 경제전문가의 지적은 이제 매우 익숙하게 들린다. 당장 주변을 둘러보면 학교 다닐 때 똑똑하고 공부 잘하던 여성들이 그 능력을 오로지 자녀 교육에만 쏟는 경우들을 흔히 본다. 이들 중 일부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겠지만, 이런 사람들까지를 포함하여 절대다수는 직장과 가정 양쪽에서 부과되는 과도한 짐을 견디지 못하여 전업주부의 길을 택한 것이다.필자가 만나 본 기업의 중간 관리자들은 노동시장에 남아있는 일군의 여성들은 태도나 실력에서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다른 일부 여성들은 직업의식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전업주부의 길을 택하지 않고 노동시장에 남은 여성들이 특별히 치열한 삶을 살거나 아니면 언제고 일을 그만두리라 벼르면서 직장에 다니는 두 부류로 나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느 경우든 만족스런 삶은 아닐 것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적극적 고용개선 조처’를 민간부문에도 적용하였다. 근로자 1000명 이상을 고용하는 대기업을 업종별로 나누어 전체 여성 고용 비율이나 여성 관리자의 비율이 비교그룹 내 평균수준보다 현저히 낮을 경우 개선조처 계획을 제출하고 그 실적을 보고하도록 하는 제도다. 기업들로서는 하나의 규제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노래처럼 부르는 현실이니 인사권에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런데 이 제도는 미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자율적인 기업 활동을 중시하는 나라들에서 우리의 새 제도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하게 펴는 제도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 제도를 40년 전에 도입하였으며, 지금도 1년에 7000곳 이상의 기업이 ‘적극적 조처 계획’을 노동부에 제출하고 심사를 받는다. 제출하는 계획서에는 인근 지역 노동시장의 가용 인력 분석까지 포함하여 구체적이고도 실행 가능한 계획이 담겨야 한다. 게다가 일부 기업에 대해서는 제출한 서류의 심사에 그치지 않고 인사 관련 기록들을 점검하고 임직원을 면담하는 등 한 달여에 걸친 방문실사가 시행되는데, 이런 방문실사에 기업으로서는 세무조사 못지않은 부담을 느낀다고 한다. 실제로 필자는 경영자협회가 주최한 인사 담당자 교육에서 이 과정에서 회사가 문을 닫게 되는 수도 있다면서 주의를 환기하는 것을 들었다.
시장과 경쟁 원리를 경제적 가치창출의 원천으로 보는 미국에서 왜 여성과 유색인종, 장애인의 고용비율을 해마다 점검하면서 감독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약자 보호와 배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쟁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게임 규칙이 공정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이들은 대답한다. ‘적극적 조처’ 제도의 취지는 여성을 차별하지 말고 공평하게 기회를 주라는 데 있다. 다른 기업보다 지나치게 여성비율이 낮다면, 고용관행의 어디엔가 여성들에게 불리한 간접차별이 존재한다는 징후로 볼 수 있다는 논리에 근거한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업 활동을 하고 마지막 결과에서 이기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고용과 인사관리의 과정이 투명하고 차별이 없어야 하며, 여기서 기업의 경쟁력도 나오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비정규직 문제든 여성고용 문제든 기업이 자율적인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는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기본 전제를 충족시키는 한도 안에서일 뿐이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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