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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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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일본의 핵 보유를 둘러싼 논의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처음 불을 지핀 나카가와 쇼이치 자민당 정조회장은 “전략적 판단에서 더는 발언을 하지 않겠다”고 한발 뒤로 물러섰지만, 지난 7일에는 자민당 사사카와 다카시 당기위원장이 ‘비핵 3원칙’의 수정 필요를 들고 나와 물의를 일으켰다. 여러 매체들에서도 찬반 양론이 분분하다. ‘핵 보유’ 논의를 정치적으로 ‘자유화’한다는 점에서 나카가와 정조회장 등의 의도는 성공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아베 신조 총리도 ‘비핵 3원칙’의 견지를 강조하면서도 현직 각료라도 핵 논의 자체는 억제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아베 총리는 이전부터 일본의 핵 보유에 적극적인 자세이며 비핵 3원칙에 대해서도 개정론을 역설한 바 있다. 북한의 핵실험이 큰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라 할지라도 정권 출범 초기부터 주요 각료와 여당의 정조회장이 일제히 핵 논의를 들고 나오고, 총리가 이를 사실상 ‘용인’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본격적인 정책 재검토의 징조인지는 조금 더 두고 볼 일이다.
<아사히신문>의 보도(11월12일)를 보면, 일본 정부는 1995년에도 방위청을 중심으로 일본의 핵무장의 득실과 가능성에 관한 정책 검토를 한 결과, 핵 보유가 미-일 동맹 약화, 주변국과의 관계 악화 등 부정적 측면이 더 크며, 미국의 ‘핵 우산’ 의존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1995년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의 무기한 연장이 결정된 해이며, 제1차 북핵 위기 직후 시점이다.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새로운 사태를 맞아 일본 정부 안에 정책 재검토 작업이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아베 정권의 핵심을 이루는 유력 정치가들의 일련의 핵 발언 배경에는 이런 기존의 정책적 선택과 결론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아베 정권에 가까운 핵 보유론자들의 주장에서 공통된 쟁점은 미국의 ‘핵 우산’에 대한 불안감이다. 냉전기와 같이 소련 또는 중국과 전면적으로 대치하고 있을 때는 미국의 ‘핵 우산’ 공약은 구조적이고 거의 자동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립 관계가 다양화하고 국지적이며 유동적인 냉전 이후 상황에서 미국의 공약이 과연 어느 정도 확실한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미-일 동맹이라 할지라도 미-일의 다양한 이해관계의 차이는 구조적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중동지역을 최우선하는 미국의 처지에서는 예컨대 북-일 대립이 첨예화하더라도 이는 ‘국지적’인 분쟁으로 미국이 전면적으로 개입할 성격이 아닐 수도 있다. 부시 2기 정권에서 보여지듯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잠재적인 대립과 동시에 전략적 협조가 추진되고 있다.
일본의 핵 논의가 불거진 직후 일본에 들른 라이스 국무장관은 미국의 대일 억지력과 방위공약이 ‘전면적’이라고 역설했다. ‘전면적’이라는 단어를 두 번 되풀이하면서 ‘강조’한다고 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대응한다’는 뜻이다. 미-일의 논의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구도와 안전보장 상황은 크게 변하고 있다. 북핵 사태가 집약적으로 보여주듯이 불안감에서 핵 보유를 지향하려는 충동도 잠재적으로 확산되기 쉬운 상황이다. 독자적인 ‘핵 보유’와 ‘핵 우산’이라는 냉전기의 이분법적 도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틀의 모색이 필요하다. 좁은 국토와 밀집된 인구, 자원과 시장의 높은 해외의존도 등 독자적인 핵 보유라는 선택이 군사적으로도 현명하지 않다는 점에서는 한국과 일본은 공통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동북아시아 지역을 염두에 둔 새로운 차원의 ‘비핵 외교’를 구상할 때다.
이종원/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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