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19 18:48
수정 : 2006.12.0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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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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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그때가 언제였는지 햇수가 기억나지 않는다. 서대문 로터리 칸트호프에서 구속자 석방을 위한 문인들의 일일주점이 열리고 있었다. 눈처럼 새하얀 티셔츠를 입고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서빙하는 ‘여학생’이 하도 눈부셔서 동행한 문학평론가 김명인에게 “쟤는 누구니?” 하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응, 공지영이라고 얼마 전 소설로 데뷔한 친군데 앞으로 한 가닥 할 것 같아 ….”
그럭저럭 취흥이 도도할 무렵 좌중이 술렁거렸다. 디제이(DJ)가 이부영씨와 함께 나타난 것이다. 그때 나는 천하의 디제이를 두어 좌석 너머에서 구경하는 행운을 누렸다. 한데 어디에나 열혈남아가 있기 마련.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며 한 민중시인이 디제이에게 다가가 삿대질을 하며 고함쳤다. “할 테면 제대로 하시오!” 정치인이라면 이런 때 너털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는 법이다. 하지만 곁에 사람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괜찮아요”를 연발하는 그의 표정은 민망함으로 많이 상기돼 있었다. 사자 같아 보였던 디제이가 실은 무척 수줍은 성정을 지녔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보다 훨씬 오래 전, 종로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유력지 정치부 기자의 결혼식 장면. 신랑과의 오랜 연고에다 축시까지 낭송한 나는 일종의 관계자였는데, 그때 확인한 세 김씨의 축의금 액수를 재미삼아 ‘폭로’ 하려다 참는다.(한 김씨만 현저히 적었다) 식이 끝나 아버지와 근처 골목길로 나서는데 눈앞에 와이에스(YS)가 혼자 걸어오고 있었다. 어럽쇼, 두 분은 갑자기 양손을 마주잡고 흡사 십년지기처럼 반갑게 대화를 나누는 거였다. 건강하시죠, 운동은 많이 하세요, 애들은 어때요? 기타 등등. 와이에스가 멀어지고 어안이벙벙한 나는 물었다. “아세요?”. “알기는! 생전 처음 만났지.” 콧구멍만한 석재상을 운영하는 장삼이사 내 아버지는 그러나 와이에스에게 벗과 같은 친밀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민추협에서 단식까지 하는, 천하 강골로만 알았던 와이에스가 실은 아주 정겨운 마음씨를 지녔다는 걸 확인했던 추억이다.
다음은 물론 제이피(JP)의 추억이어야 하는데 이렇다 할 내용을 찾을 수 없다. ‘사회 지도층’들의 공간만을 이동한 그의 동선에 닿아볼 기회가 내게 없었던 탓이리라. 하지만 70년대 국무총리 시절, 텔레비전 담화에 나와 조용 조용 말하던 그 목소리의 지적인 설득력을 지금도 나는 기억한다. 일요화가 회원으로 그가 그린 목우회풍 유화가 꽤 근사해 보였던 것도.
바야흐로 2006년 말, 지금도 우리는 세 김씨 시대를 산다. 택시를 타면 라디오에서 강석 혹은 배칠수가 연기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날마다 들을 수 있다. 지긋지긋하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내게 그 익숙한 어조들은 어릴 적 전석환 노래집의 포크송만큼이나 푸근하고 살갑게 들려온다. 그들은 우리가 살아온 시대의 정치적 내용물이 아니던가.
대선 철을 맞이해 ‘돌아온 용사’가 되려는 세 김씨의 활동상을 우려하는 글들이 보인다. 악머구리 같은 지역감정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니 근거있는 우려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냥 그러시라고 놔둡시다’라고. 여든 나이가 어떤건지 요량되지 않는다. 우국충정과 노추가 혼효된 괴이한 화학성분이 어떤 점화력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다만 세 분의 김씨 어르신은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의 정확한 자화상이자, 선진화 시대 진입기의 사회심리를 측정할 바로미터가 될 거라는 점이다. 그분들의 영향력 만큼 우리는, 우리의 세상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들에게 머물러 있는, 변하지 않은 세상을 누가 원할까.
김갑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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