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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범섭 인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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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어린 날의 고향, 그땐 왜 그렇게 짐승들이 많았는지…, 고사리손으로 겨냥한 고무줄 새총이나 조 이삭을 매단 삼태기 덫으로도 참새 몇 마리쯤은 거뜬히 잡았지요. 뭐 꼭 잡아서가 아니라 토끼몰이나 노루몰이는 으레 마을 잔치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아, 그 즐거움이라니! 그렇지만 ‘살처분님이시여!’ 고백하건대 그때 그 앙증맞은 참새의 심장과 내 심장의 박동이 일치하는 순간, 그것이 죄악임을 깨달았지요. 벌렁거리는 심장에 손을 얹고 눈을 꼭 감았습니다.오늘 아침, 살처분 범위를 반경 3킬로미터로 확대하고 이 ‘오염지역’ 안의 동물 70만 마리를 ‘살처분’한다는 전북 익산의 조류인플루엔자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기야 수년 전 충북 음성에서 530만 마리를 살처분한 예도 있지만 근래 ‘구제역’이다 ‘광우병’이다 뭐다 하면서 무수한 생명이 단지 ‘인간에게 해가 된다’는 죄목으로 살해되곤 합니다. 물론 저 자신도 그때마다 동의의 묵시적 신호를 보냈지만, 이를 지켜보면서 알 수 없는 비애와 우리 인간에 대한 의문이 먹구름처럼 일어났습니다.
불가의 한 설화는 중생의 악업에 대해 끝없는 갈증과 배고픔을 겪어내야 하는 ‘아귀도’에 떨어뜨려 ‘아귀’의 삶으로 징벌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재능으로 지구촌을 평정하고 명실공히 지구촌의 주인이 된 ‘인간’, 그 ‘승자’의 오만과 욕망은 아름다운 자연을 파헤쳐 논밭을 만들고 축사를 지어 뭇 생명을 재배와 사육의 사슬로 묶고 인간의 먹이와 노예로 관리하면서 스스로 ‘아귀도’와 ‘아수라도’의 제왕으로 등극하였습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저는 우리 인간이 이 저주를 벗어나야 지구촌의 아름다움도 회복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희망을 갖고 말씀드려 봅니다. 우선 ‘승자의 영광’을 미련없이 다 내려놓아야겠지요. 그리고 손에 든 ‘그 문명이라는 과학기술’과 또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저 ‘악마의 지식’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승리의 영광스러움과 함께 전리품도 내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인간의 모든 기득권이 포기됐을 때, 자연은 비로소 ‘배양’과 ‘재배’와 ‘사육’이라는 아수라도의 저주가 사라진 예전의 그 아름다운 모습으로 복원될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사슬에서 풀려난 식물과 동물은 물론 지금 막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한 세균과 바이러스들까지 우리 인간을 자연의 가족으로 맞이할 것이라고 봅니다.
사실, 근래 조류인플루엔자나 에이즈, 암 등 미생물의 공격에 인간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은 비록 문명이라는 과학기술이 우리에게 지구촌 최후의 승자라는 월계관을 씌워주기는 했어도 정작 진정한 인간의 주체인 ‘몸’은 퇴화를 거듭하면서 미생물의 먹이로 전락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번 살처분 사태만 해도 그렇지요. 님들은 이미 ‘사육’에 의해 어차피 소멸해갈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미생물의 공격으로 죽었고, 이것이 인간의 ‘사육’을 위협하자 ‘살처분’이라는 사태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이번 사태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것은, 자연이 인간에 종속되어 살아가면서 저항적 자생력을 잃어버린 뭇 생명들의 기생을 질책함과 동시에 우리 인간에게 배양과 재배와 사육의 기생수단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엄중히 경고한다는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이 선악의 업보로 지옥, 아귀, 아수라, 축생, 그리고 인간과 하늘의 6도를 돌고 돈다고 했습니다. 살처분의 영혼이시여! 오늘을 딛고 원하는 곳에 환생하시라. 오늘 비록 민망하지만 님들의 환생을 비는 마음의 위령탑을 건립하고 아홉번 절하여 제를 올립니다.
‘지식을 가진 무서운 동물’ 인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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