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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2.10 16:53 수정 : 2006.12.10 16:53

김갑수/문화평론가

세상읽기

속수무책, 백약이 무효고 산도 물도 다 막혔다. ‘갱무도리’라고, 다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뜻의 성어도 있는데 지금이 딱 그 짝이다. 달리 누구를 말하는 것이겠는가. 5%대의 지지율을 기록한 노무현 대통령과 망조의 집안싸움을 벌이고 있는 열린우리당에 대한 얘기다. 오스트레일리아 방문 과정에서 또 무슨 실언을 했다고 언론마다 대서특필하기에 인터넷을 뒤져 토씨 하나 빼놓지 않은 연설 녹취록을 읽어보니, 실언은커녕 교민들에게 큰 박수를 받은 진정의 토로였건만 세론은 정반대다. 미운털의 끝은 어디일까. 임기를 다 채우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기나 한 걸까?

이문열씨 같은 ‘참여작가’는 미국까지 가서 대한민국에 종말이 다가왔다고 선포하는 모양인데, 이쯤해서 남의 말 할 것 없이 나 자신부터 곰곰 생각을 추슬러 보자. 도대체 왜 나는 남들처럼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하지 못할까. 권부의 사립문 근처에도 얼씬해 보지 않은 내가 어째서 애써 현 집권세력을 옹호하고 싶은 쪽으로 마음이 흘러가는 걸까.

만일 근년의 경기침체와 부동산 폭등과 공교육 파괴와 고용불안과 이념대립이 모두 대통령의 실정과 무능 때문이라면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다. 북한의 핵도발과 미국의 강경책 역시 대통령의 탓이라면 그 역시 내가 틀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나열한 것 이상의 수천 수만가지 사회문제가 모두 무능한 대통령 탓인 것 같기도 하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고 국정의 최종 책임자니까. 오죽 하면 “어제 밤 나는 길을 가다 넘어져 코가 깨졌다. 노무현 탓이다”라는 글이 뜰까.

다만 예외가 되는, 노무현 탓일 수 없는 것들도 있으니 가령 수출 3천억달러 달성이라거나 검찰독립 같은 권력의 다원화라거나 현직 외교통상부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당선 따위는 대개 환율 탓, 기관의 독립의지, 당사자의 출중한 능력에 해당되는 것이다.

노무현 탓! 노무현 탓! 노무현 탓! 그렇다면 묻는다. 당신은 대체 무엇을 했는가? 저야 뭐 힘없는 야당이니까요, 핍박받는 언론이니까요, 가진 것 없는 민초인 걸요 등등이 모범답안인 듯한데 이 대목에서 목에 콱 걸리는 것이 있다. 우리의 삶이, 우리 사회의 변화발전이 그토록 대통령의 의지와 능력에 전적으로 좌우되어 왔다는 것일까. 너무 쉽다. 쉬운 해답은 값어치 없는 답이기 십상이다. 전면적인 국가성장과 더불어 난마처럼 복잡다단해진 사회 안 갈등과 대립의 모든 원인을 4년차 대통령 탓으로만 돌리고 면피하는 것은 너무 쉬운 해답이 아니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노 대통령 등장 후 그의 반대세력들이 집요하고 일관되게 추구한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대통령을 국가기관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격체로 느끼도록 시현한 것이다. 정책의 내용보다는 말투와 표정과 행동을, 발언의 취지와 문맥보다는 거두절미한 표현의 강조를 통해 의도적인 곡해를 반복해 왔다. 차기 집권자의 반대파들이 또다시 이런 전략을 취하고 나온다면 누가 되건 대통령 혐오증은 반복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찌됐든 지금과 같은 불만의 계절을 초래한 노 대통령은 면책될 수 없다. 하지만 속수무책, 5% 지지율의 대통령이 무엇을 책임질 수 있겠는가. 대통령 탓 즉, 쉬운 해답의 맹점이 그것이다. 각종 국가현안에서 책임의 일단을 짊어져야 마땅한 사회세력들은 그간 너무도 편리한 변명거리 속에 행복한 도피를 누려온 셈이다. 범국민적 화풀이의 대상, 불행한 왕따 대통령만 퇴임하고 나면 이 땅에 과연 멋진 신세계가 도래할 것인가?

김갑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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