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12 17:19
수정 : 2006.12.1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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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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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 해를 정리하는 세밑이 다가온다. 노무현 정부의 세밑도 멀지 않다. 그러나 오늘 노무현 정부와 한국 민주주의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사회통합의 해체로 민주주의가 기저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양극화는 경제를 넘어 이념, 교육, 정서의 영역까지 치닫고 있다. 제도와 사회적 조건을 논외로 할 때 노무현 정부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크게 세 가지로부터 비롯된다.
첫째, 능력의 문제이다. 양극화의 심화, 교육과 부동산처럼 민주정부의 무능을 보여준 부분도 없다. 민주화가 삶의 피폐화, 희망의 상실과 병진할 수도 있음을 우리는 현실로 목도하고 있다. 원칙없는 내부 파쟁, 즉 대통령과 여당 리더십의 갈등, 여당 안 분파투쟁, 정부참여 인사들의 정책비판은 보수세력의 반대가 무능의 유일요소가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둘째, 말의 문제이다. 노무현 정부는 언론과 기득세력의 비판처럼 불만스런 부분도 없었을 것이다. 특히 이념공세는 건설적 비판을 넘어 파괴적 비난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말에 관한 한 민주정부의 대응은 자해적이었다.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 “홍보가 문제다” “국민이 뒤져 있다”며 계속되는 날선 반박은 국민의 마음을 떠나도록 했다. 겸손의 자세였다면 국민은 외려 개혁의 성공을 위해 힘을 보탰을 것이다. 탄핵반대가 언론 때문이 아니었듯 지지율 공황상태도 마찬가지이다. 민주주의에 관한 한 다중의 집합적 지혜는 소수의 사회공학적 재능을 뛰어넘는다.
셋째는 도덕성의 결여다. 노무현 정부가 능력과 말은 문제가 있으나 도덕성은 인정해야 한다는 평가는 실제는 반대다. 책임윤리의 부재로 직결된 도덕성 결여는 지지이탈의 핵심요인이었다. 인사·부동산·교육은 특히 그러했다. 첫째, 전문성 및 능력과 무관한 장관·기관장·감사의 반복 임명은 민주적 덕성의 붕괴를 상징한다. 둘째, 평생노동의 대가가 1년 아파트값 상승에도 못미치는 근로가치의 소멸사회에서 강력한 부동산 정책은 필수적이었다. 버블세븐지역 사람들을 비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민주정부 엘리트의 50∼60%가 그 곳에 거주하고, 게다가 정책발표 시점에 그 지역 부동산을 구입하며 그들의 부도덕성을 질타하는 것은 도덕성 상실의 극치였다. 셋째, 양대 사교육 시장인 학원과 논술을 통해 공교육을 황폐화시킨 주범은 386세대였다. 나쁜 수단이 좋은 목적 자체(교육과 민주주의)를 파탄시켰던 것이다. 전도된 도덕주의는 자신들의 부도덕성을 은폐하고 다른 사람의 그것을 공격한 이중 윤리장애였다.
오늘날 두 거인 이순신과 정약용의 언명은 큰 울림을 갖는다. 1594년 9월3일 일기에서 이순신은 “나랏일이 엎드러지고 자빠졌건만 안으로 구할 길이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어찌하랴” 통곡한다. 자빠진 국가현실보다 그를 더욱 절망하게 했던 것은 안에서 구할 길이 없다는 점이었다. 다산은 국가의 가장 큰 다행으로 주저없이 모든 인재의 등용을 든다. “범위 넓히기를 강화하고 치우침과 사사로움을 개혁하여 인재가 비로소 모두 등용될 수 있으면 국가의 다행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다.” 지금 이 말들이 깊은 공명을 갖는 것은, 중대한 국가·사회문제의 존재에 관계없이 끝없이 작은 분파와 이념으로 갈라져 사안마다 증오하고 쟁투하는 현실로 인해 좋은 비전, 인재, 대안의 사산과 소멸의 정도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다시 널리 인재를 찾고, 비판에 대해 숙고하며, 도덕적 자기 과신에서 벗어나, 능력과 말과 도덕성을 깊이 사려하는 민주정부의 모습을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것은 한 정부의 실패가 국가와 민주주의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 요건이기 때문이다.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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