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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재/코레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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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임기 초반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발언에서부터 얼마 전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에 이르기까지, 그간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 차례 대통령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물론 그의 직설적 표현들은 늘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정치적 복선’, ‘경솔한 언행’이라고 비난받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대통령 자신의 고뇌와 좌절을 상기시키는 효과도 있었다.노무현 대통령의 이러한 소감에는, 그에 대한 지지 여부나 개인적 감정을 떠나, 차기 대통령 지망생이나 유권자들이 오히려 경청해야 할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준비된 대통령’이건 그렇지 않건, 막상 대통령이 되고 나서 직접 체험해 보면, 대통령의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 국정운영 여건이 대통령이 되기 전 생각했던 것과는 엄청난 격차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의 진솔한 고백이자 문제제기인 것이다. 여러 차례 국회의원과 장관직을 경험하고 대통령을 꿈꿔왔던 정치인조차 미처 몰랐을 정도로, 현실의 대통령은 일하기가 너무 힘들어진 것이다.
왜 무엇 때문에 대통령이 이렇게 일하기 힘들어졌을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 자체의 문제일까, 아니면 우리의 대통령 제도 자체가 취약한 것일까.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민주화 과정에서 선택한 5년 단임 대통령제도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대통령 단임제는 효율적인 민주주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민주화 이전의 장기 군부독재에 대한 공포의 산물이었다. 단임제는 평화적 정권교체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통령 당사자의 직무수행 측면에서는 태생적으로 취약한 제도다.
5년이란 기간이 세상을 바꾸기에 그다지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5년이 지나면 퇴임할 대통령이라는 사실 자체 때문에 대통령은 그 5년조차 제대로 쓰기 어렵다. 중간에 총선과 지방선거가 있고 참여정부에서는 탄핵사태로 말미암은 국정 중단마저 있었다. 또 최근의 열린우리당 내분이 보여주듯, 차기 집권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현직 대통령을 버리거나 탈당을 요구할 수 있는 것도 단임제의 맹점이다. 게다가 이전 정부로부터 넘어온 과제라도 있으면 그 뒤치다꺼리에 시간과 자원을 뺏기게 된다. 참여정부 초기의 신용카드 부실 문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더하여 대통령의 짧은 재임기간은 정책의 입안과 실행에서 중추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할 직업관료 집단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으로 불리하다. 관료집단은 이미 ‘5년 대통령’ 대응 방법을 체득한 상태다. 외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대통령이 누군가에 따라 한반도의 안보상황은 크게 좌우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서 ‘할말은 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지만, 그의 임기 5년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임기 8년에 완전히 포박당한 상태였다. 그것을 미국이 활용하지 않을 리 없다.
시야를 더 넓히면 단임제는 언론의 정치 권력화를 더욱 촉진시킬 것이다. 어떤 권력구조가 언론과 정부 사이 건강한 긴장관계에 가장 좋은지는 모르겠으나, 지난 몇 차례의 단임 대통령을 겪으면서 우리 언론의 정치 권력화가 분명해진 것은 단임제의 또다른 일면을 보여준다.
물론 당분간 단임제가 고쳐질 전망은 없다. 그렇다면 단임제 대통령이 직무를 더 잘 수행하게 만들 다른 대안은 없을까. 없는 건 아닐 테지만, 서로 자기가 가진 것을 내놓기 싫어서 안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되든 차기 대통령도 5년 후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처럼 좌절하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이윤재/코레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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