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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범섭 인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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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육백년 만의 ‘황금돼지해’라는 추임새가 제법 희망을 부추기는 새해, 저 동해의 푸른 바다를 뚫고 치솟을 정해(丁亥)년, 그 해오름에 ‘큰 그림’의 소원을 띄워보기로 하자. 여럿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마침 오늘은 성탄절이다.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왕을 끌어내려 백성의 무릎 밑에 앉힌 민주주의, 그 이념을 설계한 예수님의 상상력에도 경배를 보내며, 반세기가 넘도록 풀리지 않는 우리의 소원을 빌어보자.반만년 찬란한 역사가 냉전시대의 제물로 바쳐져 이데올로기의 각축장이 되고 끝내 두 토막이 나자, 이게 웬일인가. 그렇게 착했던 사람들이 이쪽저쪽으로 갈라져 죽기살기 식으로 쌈질을 하다니! 그래서 저토록 견고한 분단체제를 구축하다니. 실로 허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를 너와 나로 갈가리 찢어놓았던 그 이념은 단지 약육강식의 투망이 드리운 그림자가 아니던가. 강자가 설치해 놓은 덫일 뿐이다.
이념의 서식처인 분단구조에서 자생력을 획득한 변종 바이러스가 전신으로 퍼지고 그 종양덩어리가 맨눈으로도 감지되는 지금, 정작 지구촌의 모든 영광을 다 거머쥔 저 ‘약육강식’의 승자들은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던 이념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오히려 승전까지의 고단한 몸을 누일 쉴 곳을 찾아 동양으로 눈길을 보내고 있으니…. 그렇다. 이제 더는 망설이지 말자. 아직도 내 안을 서성이는 저 20세기 이념의 시대를 청산하자.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역사를 설계하고 창조하는 역사의 주인이 되자.
우리 생각의 원류를 찾아 올라가면 그 끝에서 소박한 삶으로 집성한 ‘태극’ 사상과 만난다. 대상을 좇아 밖으로 달려나가야 하는 투쟁의 연속이 아니라, 그래서 그 승리의 끝에서 절망하는 게 아니라, 세계를 내 안으로 끌어들이고 다시 너와 어우러지면서 확장되어 나가는, 모든 존재의 들고 나는 생명의 순환 이치가 바로 ‘태극’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음악과 도덕까지 태극에서 찾고자 했던 주자학이 말하듯이, 태극 사상은 세계, 즉 생명을 설계하고 생성하며 지휘하는 ‘존재의 근원’에 주목하면서 우주를 ‘생명의 무리’로 보고 거기서 소우주적 존재인 인간의 존재적 이치와 영생을 모색한다.
분수에 넘치는 줄 알지만, 칠천만의 ‘해맞이 꿈’에 하나의 꿈을 더 보태고 싶다. 분단체제의 한복판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민족의 터전인 한반도 위에 X 자를 올려놓으면 두 직선이 만나는 지점에 개성이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땅이다. 지금 이 ‘북쪽’ 땅에서 피어나는 ‘대한민국’의 화려한 모습을 보라. 선물은 주고받는 것, 이제 대한민국의 땅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초대하자. 그 지역이 장단이면 어떻고 파주면 어떠랴. 이곳에 개성과 어우러지는 또 하나의 공단을 만들자. 그래서 한 쌍으로 돌아가는 남과 북의 어우러짐으로 민족의 태극을 만들자. 그렇다. 그 ‘쌍 공단’에서 분단구조의 모든 현상은 반전할 것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우리 민족에게 온갖 고통을 안겨주던 어둠은 환한 양지로 바뀔 것이다. 분단체제는 생성과 창조의 구조로 거듭나고, 당장 개성공단의 생산자 표시 문제와 통관 문제, 유통 문제 등이 ‘쌍 공단’의 신비한 힘으로 술술 풀릴 것이다. 생각을 바꾸자, 분단구조에 묶여 있는 우리 안의 분단체제를 허물고 정해년의 해오름을 칠천만의 희망으로 받아안고 크고 아름다운 꿈을 꾸자. 오! 태양이여! 동해를 박차고 솟아올라라.
심범섭 인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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