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26 17:32
수정 : 2006.12.2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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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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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반도에 ‘핵시대’를 가져 온 2006년이 저물어간다. 가냘픈 기대를 걸었던 6자 회담도 구체적인 진전을 보이지 못한 채 끝났다. 물론 본격적인 북-미 협상을 앞둔 전초전 성격이 강하다.
1월에 열릴 북-미 협상에서 미국의 금융제재가 어떤 형태로든지 타결될 경우, 북핵 문제에 큰 돌파구가 찾아질 수도 있긴 하다. 6자 회담 종결 이후에 나온 일련의 발언들을 종합하면 미국이 요구한 초기 이행 조처의 핵심인 영변 핵관련 시설 가동정지 ‘대가’를 둘러싼 치열한 조건 투쟁과 흥정이 대립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탕자쉬안 국무위원은 미국이 금융제재를 해제하면 북한이 영변의 원자로를 정지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금융제재 해제는 전제조건이며, 그 이후에야 핵문제에 관해 논의할 수 있다는 김계관 부상의 기자회견이 북한의 입장일 것이다. <아사히신문>이 전한 중국의 중재안도 영변의 핵시설 정지와 식량 및 에너지 지원이 중심 내용이라고 한다.
주목되는 점은 이런 제안들이 구체적이며 조건에 따라서는 당장 실행 가능한 것이라는 점이다. 금융제재라는 새로운 요소를 제외한 제안들은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의 초기 조처인 ‘핵시설 동결 대 에너지 지원’의 도식과 비슷하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지금 상황은 물론 94년과는 다르다. 그러나 북-미 양쪽 모두 94년 수준을 포함해서 최소한의 합의로부터 얻는 이익은 적지 않다. 북한으로서는 이미 최대로 잡아 핵무기 13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한 상황에서, 핵실험 이후의 제재국면을 전환시키고 식량과 에너지 지원 등을 획득할 수 있다면 영변 핵시설의 ‘정지’는 충분히 타협할 만하다. 미국 부시 정권으로서도 94년과 같이 미국이 중유를 공급하는 방식이 아닐 경우, 사태 악화 방지라는 관점에서, 영변 핵시설 정지가 북핵문제 전체에 올가미를 씌우는 발판이라는 의미가 있다. ‘모든 핵계획의 신고’ ‘핵실험장 폐쇄’라는 크리스토프 힐 차관보의 요구들은 클린턴 정권과 차별성을 가지면서 단계적 접근을 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0월9일 핵실험을 계기로 북한과 미국의 처지가 역전된 느낌조차 받는다. 작년 9월 이후 북한은 금융제재가 큰 타격임을 숨기지 않고 미국에 매달리다시피 교섭을 요청했다. 반면 미국은 금융제재의 압박 효과에 만족하면서 북한과의 접촉조차 거부했다. 돌이켜 보면 북한의 ‘허허실실’ 전략이었을 수도 있다. 부시 정권의 압박과 강경 자세를 이유로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런 ‘공방’이 없었더라면 북한의 핵실험은 더 큰 충격파와 반발에 휩싸였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렇게 강경하던 부시 정권이 교섭에 매달리는 모양새다. 북한의 고자세를 보이는데도 6자 회담 계속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라크 정책의 실패, 중간선거 패배로 부시 정권내 강경론이 크게 후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의 ‘저자세’는 다음 단계 압박을 위한 국내외 알리바이로서도 필요하다.
이번 6자 회담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은 양국간의 긴밀한 협조를 의도적으로 과시했다. 여러 갈등요인을 내포하면서도 미국 부시 정권은 전략적인 미-중 협조체제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비핵화’라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매개로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 장래에 관한 사실상의 ‘공동관리’ 체제를 본격화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핵’이 불거질수록 한반도에 대한 이른바 대국의 개입과 관여가 증폭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위상이 더 무력해지기 전에 다각적으로 북한을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종원/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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