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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건국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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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교수신문>은 올해를 ‘밀운불우’(密雲不雨)란 문자로 요약했다. 여건은 조성되었으되 일이 성사되지 않고 정치가 도리어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면서 답답하고도 불만스러운 한 해였다는 것이다. 이 말의 출처인 주역 소과(小過)괘는 높은 산 위에 우레만 가득한 형상을 의미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탁상공론과 허장성세로 일관하면서 민중의 요구를 외면하는 위정자를 경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괘는 절제하고 근면하며 스스로 몸을 낮추어 세간 일을 돌보기를 강조한다. 짙은 구름이라도 너무 높이 올라가 아래의 찬 기운과 만나지 못하면 비를 내릴 수 없기에 군주에게 아랫사람과 부단히 소통할 것을 권한다.올 한 해 민중들이 받은 핍박은 이 괘상의 우려에 정확히 대응한다. 부동산 가격 폭등은 갖지 못한 자들을 영구히 가질 수 없는 자로 내몰았고, 노동법의 야합은 비정규직뿐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까지도 시장의 폭력 앞에 벌거벗겨 놓았다. 거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그나마 민중들의 삶을 지탱하던 국가적 보호장치마저 초국적 자본의 위력에 내몰리게 한다.
대통령은 “부동산 말고 꿀릴 것 없다”지만, 오늘도 서울역을 떠도는 한국고속철도(KTX) 여승무원들의 외침에는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승무원들의 비애가 겹치고, ‘양극화’로 검색한 뉴스는 올해에만 2만3천건이 넘는다. 평화는 이미 인권임에도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평택 주민들의 삶을 박탈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희생시킨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산중의 우레에 가려 들리지 않는다. 평화적 시위문화라는 허상 앞에서 생존과 평화권을 외치는 대추리 주민들은 폭력범이 되고, 신자유주의에 항거하는 노동자들은 교통체증의 원흉으로 내몰린다. 국가의 폭력을 시장이 대신하는 상황에서 차별금지를 요구하는 장애인의 인권은 경제적 타산을 앞세운 도구합리주의의 구호에 자리를 빼앗긴다. 자본의 대리인이 되기에 급급한 관료들은 시장의 잣대로 인간사를 재단하고, 술수에만 익숙한 정치꾼들은 당파적 부분이익조차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다. 이 와중에 민중의 애환은 형식적인 법률논리에 갇혀버리고 국민의 참여는 그들의 정치에 밀려나게 된다.
주역에서 “올라가는 것은 거슬리고 내려오는 것은 순탄하다”고 함은 이런 현실을 경계한다. 정치인들은 민심에 아랑곳않고 목소리만 높이며 관료들은 권력에 안주하여 보신에 전념할 때 세상은 이를 처단하게 된다. 이 괘가 은나라 주왕과 주나라 문왕을 대비시킴은 이 때문이다. 주 문왕은 높이 3천자의 녹대에서 권력과 쾌락만 탐하던 주왕을 정벌하기에 앞서 이 괘상에 임하여 먼저 강태공과 더불어 민생을 도모하고 국력을 강화하였다. 민심이 곧 천심이기에, 명분을 얻었음에도 홀로 앞서나가지 않고 임금이 근신하며 신하와 백성이 서로 화합하여 소통함으로써 후대의 대업을 이루기 위한 시의를 이루어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항간에는 민심이 뽑은 이 괘를 두고 자기반성의 계기로 삼기는커녕 박극복래(剝極復來)니 운행시우(雲行施雨), 한천작우(旱天作雨)니 하는 대구를 들이대며 정치선전에 열중하기도 한다. 스스로 높은 자리에 처하여 마치 자신들이 민심을 만들고 시대를 이끄는 양 가장하는 것이다. 주역은 이런 만용을 “재앙이라 한다”고 못 박는다. 이런 행태가 바로 ‘밀운불우’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황금돼지 해라는 중국식 속설조차도 희망으로 삼고 싶은 우리 민중들에게도 어김없이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그 새해에는 헛된 구호만 우렁찬 대선정국이 아니라, 산 아래에서 우레소리가 들리기에 군자는 말을 아끼고 근신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길러낸다는 이(頤) 괘나 점쳐 보고 싶다.
한상희/건국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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