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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2.31 18:26 수정 : 2006.12.31 18:26

김갑수 문화평론가

세상읽기

새해가 밝았다. 새 희망, 새 기쁨, 새 소식 … 그러고 보니 새 슬픔, 새 절망 같은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새로움은 기쁨과 기대를 견인하는 법이다. 지금은 잠시 기뻐해도 좋겠다. 새날이 아닌가.

내용 없는 신년 예찬이 공허한 줄은 안다. 그래도 이렇게 반색을 하며 새날을 맞이하는 까닭은 헌 날들이 꽤나 지겹고 괴로웠기 때문이다. 될수록 오래 헌 날의 동아줄을 풀어두고 오직 새날만을 생각하자. 새날은 희망이니까.

새날에 희망하는 첫째 목록은 행복이다. 헌 날에 나는 행복이란 그럴 만한 조건이 갖춰져야 오는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러한가. 행복의 조건은 충족될수록 더 많은 목록을 늘어놓는다. 헌 날의 마음가짐이 계속된다면 행복이란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불행감은 습관이고 행복감은 결심이다. 이번 생에 행복을 체험하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결단해야 한다. 때마침 새해가 아닌가.

새날의 두 번째 희망은 평온이다. 헌 날의 일상은 전투를 치르는 듯했다. 이기거나 앞서가는 것만이 열심히 사는 것이요 잘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길 수 없는 일이 훨씬 더 많음에도 맹목의 전투를 날마다 치르곤 했다. 평온함을 가두는 삶의 악다구니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인 양 여겼다. 하지만 그러한가. 우리는 공생과 공존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다. 전투적인 삶 역시 습관이라면 삶의 평온 또한 결심에서 온다. 이기거나 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지금은 새해가 아닌가.

새날에 세 번째로 격조를 희망해 본다. 날것의 상태로 막 사는 것이 인간적이고 진솔한 자세라고 여긴 것은 헌 날의 생각이다. 다듬지 않은 날것은 거칠고 무디다. 거칠고 무딘 것은 자기편의적으로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기 편의적인 태도가 타인에게 얼마나 많은 불편과 상처를 안겨주었을까. 그것은 또한 얼마나 되갚음으로 내게 돌아왔을까. 격조 혹은 교양이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자기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한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격 낮은 삶의 태도 역시 습관성이다. 그런 헌 날의 악습을 끊고 격조 있는 삶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의 결단이다. 오늘은 새해 새날이니까.

새해에도 헌 날은 계속될 것이다. 당장은 국가적으로 부동산 문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이 두 가지 현안이 우리들의 행복과 평온과 격조를 쥐락펴락할 것이다. 하지만 희망의 새해다. 언제나 정권보다 국민이 앞서 나가 결국은 문제를 해결해 냈던 체험을 우리는 공유하고 있다. 지난 30여년의 성장사에서 단기적 실패나 미시적 오류가 끊이지 않았음에도 큰 틀의 국가 신장세는 멈추지 않았다. 아울러 성장의 양만큼 불만과 분노의 양도 동반상승해 왔다. 헌 날에서부터 이어져온 외부적 상황은 계속되겠지만, 새날의 결심을 통해 우리들의 마음속은 좀더 행복하고 좀더 평온하며 좀더 격조 높아질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이 결심으로 성사될 수 있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세부 내역을 덧붙이고 싶다. 개인의 행불행을 더는 외부 탓으로 돌리지 말자는 것. 애초부터 쾌적하기만 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좋은 시절이란 항상 과거형으로 등장하기 마련이라는 것. 주어진 삶에서 좀더 나은 상태를 만들어 주는 것은 외적 요인보다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에 훨씬 더 좌우된다는, 결코 새롭지 않은 깨달음을 이번 새해에 단단히 한다.

새해여, 반갑다, 함께 가자!


김갑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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