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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욱/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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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정초부터 신문마다 ‘386 세대론’이 활발하다. 올해가 6월 항쟁 20돌이 되는 해로서 이를 경험한 이들이 각계각층에서 중요한 몫을 하는 연령대가 된 점, 현 정부 들어서 386 의원들이 국회에 진입하고 청와대 보좌진에 포진함으로써 이들에 대해 일정한 평가가 가능하게 된 사정, 지난 대선에서 386에 속한 이들이 선거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점 등이 386 세대론을 부추기는 이유다. 특히 올해는 대선이 있는 해이고, 연초부터 앞장서서 모든 문제를 대선으로 몰아가는 언론으로서는 이들의 표심이야말로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386 세대란 1960년대에 태어나서 8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그 용어가 제기되었을 때 30대에 진입한 세대, 지금으로 치면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의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 당시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을 고려할 때 80년대 ‘학번’으로 한 세대를 분류하고, 그 세대 전체를 통칭하는 것이 얼마나 정확한 분류법인지 의문이다. 하지만 그 세대가 6월 항쟁을 통해서 민주화의 신념을 실현하고, 민주주의적 가치를 내면화한 점에서 일정하게 세대적 공통성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386 세대라는 용어를 그 윗세대인 4·19 세대라든가 민청학련 세대, 긴급조치 세대, 그리고 그 이후에 나온 비정치적인 세대라고 하는 엑스(X)세대나 엔(N)세대 등의 용어와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있다. 4·19 세대부터 386 세대까지는 정치적 경험의 공유가 세대 구분의 기준이고, 그런 의미에서 386 세대란 공통의 정치적 경험을 토대로 한 마지막 세대 구분이 되는 셈이다.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 그의 나이 74살이었다. 신생 독립국의 초대 대통령으로는 무척 연로한 편이었는데, 반민특위 해체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듯 그는 독립운동가들의 경험보다는 친일파를 주요한 정치적 기반으로 해서, 그들의 경험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을 때 그의 나이 45살이었고, 정계에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있었다. 그는 구악일소를 내걸고 권력을 잡았지만 결국 구악과 유착했고, 10월 유신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나듯 과거 일본군 시절의 경험을 한국 정치에 이식했다. 전두환이 12·12정변을 일으켰을 때 그의 나이 49살이었고, 그는 광주시민들의 희생 위에서 사회정화를 내걸고 집권했지만 그 정권은 정경유착에 의한 부정부패로 시종했다. 와이에스와 디제이는 70년대 초반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야당붐을 일으켰지만 집권하기까지 한 세대를 더 기다려야 했고, 그것도 3당 합당, 제이피와 정치적 연합을 통해서야 가능했다. 한마디로 20세기 말까지 한국 정치의 세대교체는 대단히 폭력적으로 진행되거나 아니면 기득권층과 타협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했고, 그외의 방법으로 새로운 세대의 경험을 정치에 투영할 수 있는 통로가 막혀 있었다.
일부 386 출신 정치인들의 미숙함과 부박함을 들어 386 세대의 경험에 대한 청산적 논의가 횡행하지만 개혁세력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조작과 특정 정파의 정략적 차원의 여론몰이로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정치인 외의 다른 386들이 들으면 기분 나빠 할 소리이고,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과연 건전하고 생산적인 논의인지 의문이다. 눈앞의 대선에 연연하지 말고, 386 세대가 지향했던 정치적 민주화의 가치들을 사회적·경제적 민주화로 확대하면서 386 세대에서 엑스세대로, 또 엔세대로 이어지는 새로운 세대적 경험을 정치권에 수혈하고, 사회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치발전의 대계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이다.
정용욱/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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