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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11 16:46 수정 : 2007.01.11 16:46

이윤재/코레이 대표

세상읽기

허구한 날 대통령을 화제로 삼는 이 세태에 가담하기는 싫다. 세상을 살면서 생각하고 챙길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세밑새해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갈 때마다 ‘다음 대통령은 정말 잘 뽑아야 한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듣고, 또 며칠 전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대통령 얘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해 실망하면서, 다음 대통령에게 무한한 기대와 신뢰를 품고 있는 오늘의 세태는 5년 전, 10년 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현직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무시가 매우 노골적이 되었고, 이젠 아예 군사정권 시절의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바람직한 미래 대통령 상으로 내세운다는 사실이다. 자기 손으로 뽑은 대통령은 조롱하면서, 국민의 선택권 자체를 빼앗았던 대통령은 그리워하는 이 모순 속에 바로 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적나라한 모습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을 둘러싼 논란을 제도와 여건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개인의 문제로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유린했지만 경제성장을 이룩한 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며 그를 닮은 차기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대통령이 등장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박 대통령의 가부장적 리더십은 기본적으로 장기집권과 독재라는 그의 통치 환경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흔히, 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그의 타고난 자질이라고 믿고 있으나, 사실 집권 초기부터 그가 대단한 리더십을 발휘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962년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앞선 정부가 그의 쿠데타 이전에 준비해 오던 내용을 차용한 것이고, 그의 권력기반 역시 초기 수년간 우여곡절과 정변을 겪은 다음에야 공고화되었다.

다시 말해, 그가 18년간 독재자로 장기집권하면서 동원하고 누린, 행정-입법-사법 전권의 장악, 정보 공작 정치를 통한 정치적 ‘안정’, 국정 경험의 축적, ‘자유로운’(실은 임의적이고 지역차별적인) 인사권 행사, 관료집단의 일사불란한 충성과 복종, 정경유착, 집회와 결사 자유의 통제와 노동권 억압, 그리고 언론 탄압을 통한 여론 조작 등이 바로 그가 칭송받는 ‘지도력’의 근원이자 실체인 것이다. 그 어느 것 하나 5년 임기의 직선제 대통령에게는 허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은 민주화 과정에서 극복 대상이 되었던 부끄러운 역사다. 박 대통령 역시 5년 단임이었다면 그가 남긴 성과 역시 대단치 않았을 것이다.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들이 박 대통령보다, 아니 대통령으로서, 혹 미숙하거나 취약해 보인다면,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권한과 여건의 대통령 제도를 선택한 민주화의 결과이지, 대통령 자연인의 역량이나 리더십의 문제로 환원하고 일방적으로 비난할 일이 아닌 것이다. 나아가 일반 시민들이 4년 전 “좀더 잘 판단하여 선택”하지 못한 죄책감에 빠질 문제는 더더구나 아니다. 헌법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나라의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며 그 다수의 판단과 선택은 최종적이며 자기완성적인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영웅적 능력’을 가진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집착에서 해방되었으면 좋겠다. 나라의 운명이 대통령 한 사람의 개인적 리더십으로 좌우되던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뛰어난 인물’을 고르는 작업이 아니라,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그 사람이 자신에게 부여된 국정운영의 권한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사회의 역량을 키우는 일이다. 대통령 4년 연임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기대한다.

이윤재/코레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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