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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범섭/인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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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7세기의 사상가 토머스 홉스는 ‘사회계약’으로 성서가 전하는 괴동물 리바이어던의 능력을 가진 절대주권국가를 세워 신권에서 해방되어야 민주주의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다고 했다. 비록 소수의 민주주의이긴 했지만 그의 말은 적중해서 이후 인류는 민주주의 시대를 열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절대주권국가는 ‘만인의 평등’을 무기로 ‘만인을 위협’하는 독재자들의 위장 취업장이 되면서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만인의 적이 되었다.벌써 스무 해가 되었지만, 1987년 우리는 역사의 제단에 많은 생명과 피와 눈물을 바치고 이 땅에서 자란 ‘리바이어던’의 위장 취업자를 끌어내렸다. 그리고 이 가짜 민주주의에 질린 나머지 우리는 삼장법사가 손오공의 머리에 씌웠던 청동 머리띠를 제작하여 리바이어던의 머리에 씌우고 “국민이 대통령이다”라는 간판 앞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철갑옷을 두껍게 입힘으로써 대통령을 국민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머슴과 주인의 관계로 명백하게 확인했었다. 그렇다. 이제 리바이어던은 확실히 우리의 ‘머슴’이다. 이것이 ‘87년 헌법’의 본질이다.
이제 우리는, 무한한 능력과 재능을 가졌지만 언제 까탈을 부릴지 모르는 말썽꾸러기 손오공을 데리고 삼장법사가 오순도순 즐겁고 재미있게 만리서역을 찾아가듯, 언제 본색을 드러낼지 모르는 괴력의 동물 리바이어던, 아니 우리의 대통령, 아니 우리의 ‘머슴’을 어르고 달래면서 우리 모두의 희망과 꿈과 이상을 향해 즐겁고 행복한 미래 여행길에 나설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만인의 생각은 너무나 달랐다. “저건 손오공일 뿐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했던 절대권력의 신성 리바이어던이 아니다”라며 통곡과 저주의 주문을 외우는 광신도에서부터, 신성 부활에 겁을 먹은 아류 지식인들, 그리고 그냥 학벌과 지역과 가문과 가난 타령에 합창하며 따라가는 해바라기 주문이 폭발한다. 그 함성은 87년의 함성을 덮고도 남았다. 모든 사람이 리바이어던의 백성으로 거듭난다. 저주의 구름이 이 땅의 역사를 덮어가고 있다.
끝내 꽃 장식 모자를 통해 전해오는 고통은 머슴 리바이어던 손오공으로 하여금 “나는 동네북이다”라고 외치게 한다. 그리고 리바이어던의 강력한 에너지를 주인에게 반납했다. 아! 세계 역사상 이보다 더 찬란한 민주주의의 주인과 머슴의 이야기는 없으리라. 대한민국의 주인은 위대하다.
그러나, 우리의 머슴이 진정 죽고 그 자리에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살아난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돈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는 그런 날이 오기에 앞서서 저 87년 그 스무 해 전의 잔인한 역사가 시작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또 다시 민주, 민족, 민중을 외치는 거리의 함성이 정치의 계절을 되살리지 않겠는가. 이 얼마나 끔찍스러운 일이냐.
자 이제 우리 모두 저주의 주문을 접자. 그리고 헌법 1조가 규정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주인으로 돌아가자. 신자유주의의 태산을 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라의 주인으로서의 능력과 품위를 갖춰 나가자.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목을 졸랐던 저 부끄러운 행동이 이 땅의 주인인지 머슴인지조차 몰랐던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반성하면서, 멋있는 나라의 미래를 꿈꾸고 설계하자. 그리고 ‘대한민국의 머슴’에게 “이거 해봐!”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주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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